[퇴근길 사회]
31일 오후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는 폭염으로 장사를 접고 휴가를 간 점포들이 많고 그나마 문을 연 점포들은 손님이 없어 한적하다.
‘찜통 더위’가 이어지던 7월 30일 오후 1시 반.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한 떡볶이 가게를 찾아가 ‘오늘 손님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사장 윤모 씨(53·여)는 손가락 하나를 폈다. 오전 11시에 가게 문을 열었지만 2시간 반 동안 온 손님이 1명뿐이라는 뜻이다. 그마저도 가게 옆 공무원학원에서 공부하는 단골이 “이모가 걱정된다”며 왔다고 한다.
윤 씨는 무더위 때문에 가게 손님은 줄어들고 물가는 오르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폭염의 영향으로 떡볶이 재료인 양배추, 깻잎, 대파 모두 20% 이상 비싸졌다. 반면 뜨거운 떡볶이나 어묵을 사먹는 손님은 확 줄어들었다. 그는 “떡볶이를 사먹으면 얼음물을 제공하지만 장사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폭염에 그늘 깊어지는 소상공인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폭염에 서민들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소상공인들이 ‘폭염 물가’의 직격탄을 맞았다. 김대영 씨(46)가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의 과일소매점 판매대에는 과일이 듬성듬성 놓여있었다. 햇빛이 너무 강해 과일이 잘 자라지 않아 과일 값이 크게 올랐다. 비슷한 크기의 수박을 지난해보다 5000원 정도 비싸게 팔고 있다고 한다. 안 팔리다 보니 지난해에는 도매상에서 수박을 하루 40통 가져왔지만 올해는 15통만 가져온다. 김 씨는 “매출이 줄어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서울 성북구 길음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이경태 씨(51)의 매출도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더위 때문에 전통시장이 아닌 인근 대형마트를 찾는 사람이 늘어서다. 반면 생선을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 얼음비용은 더 많이 쓴다. 이 씨는 “지난해 여름엔 매일 5포대 가량 썼지만 올해는 10포대 이상 쓰는 날도 있다”고 했다.
● 최저임금, 전기료, 임대료 ‘삼중 폭탄’에 신음
서울 종로구에서 PC방을 10년째 운영 중인 손모 씨(62)는 올해가 가장 힘들다. 31일 오전 11시경 방학 기간인데도 전체 56대 컴퓨터 중 10대 앞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4대의 대형 에어컨은 24시간 가동 중이다. 누진세 때문에 평소보다 전기료가 40만 원 이상 더 나왔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같은 크기의 보통 가게보다 2배가 넘는 냉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손님이 없는 시간에도 에어컨을 끌 수 없다. 손 씨는 “에어컨 1대만 꺼도 덥다며 손님들이 나가버린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전기료가 늘고 임대료 부담도 커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야간에 에어컨을 꺼버리는 고시원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청년들도 있다. 대학생 안모 씨(23)가 살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시원은 누진세를 줄이기 위해 밤에는 환풍구를 통해 나오는 에어컨을 꺼버린다. 창문조차 없는 방에 사는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방문을 열어놓고 자기도 한다. 안 씨는 “밤마다 땀이 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그저 참고 자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김민찬 인턴기자 서울대 미학과 졸업
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