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5년째 계류 日강제징용 배상 재판… 최고령 소송인 이춘식씨
이춘식 씨가 2013년 7월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승소한 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제공
이춘식 씨는 주민등록 기준으로는 올해 94세,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98세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 등 일제강점기 전범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강제징용 피해자 9명 중 최고령자다.
2013년 8월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됐을 때만 해도 곧 판결이 나는 줄 알았다. 5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매일 집 전화를 바라보며 선고만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5명이 모두 세상을 떠나는 등 함께 소송을 냈던 동료가 8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광고 로드중
이 씨는 “재판을 한 지 벌써 13년째인데 법원에서 어찌 이상하게 해결을 미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 씨는 “신속하게 결정을 해야 한다. 대법관들이 문서를 그대로 방관시하면 쓰겠느냐”라고 일침을 놨다.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김세은 변호사는 “대법원이 판사들의 편의를 위해 고령인 피해자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다니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김진영 간사는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은 개인과 회사의 민사소송으로 보이지만 한국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했다.
이 씨는 10대 시절인 1941년 보국대로 동원됐다. 일제가 조선인 학생, 여성, 농촌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이 씨는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구일본제철 모집담당관에 의해 충남 보령시에서 일본으로 끌려갔다.
구일본제철의 가마이시(釜石)제철소 노역은 당초 약속받았던 기술 습득과는 거리가 멀었다.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뜨려서 뒤섞거나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서 석탄 찌꺼기를 제거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기숙사 사감이 “임금 전액을 지급하면 낭비할 우려가 있어 저금해주겠다”며 돈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고된 일을 버티지 못해 도주하다 발각되면 구타를 당했다. 이 씨는 “1945년 제철소가 공습으로 파괴되고 일본이 패전해 겨우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이 씨는 동료들과 2005년 한국에서 소송을 시작했다. 1, 2심은 일본 법원과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은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013년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은 신일본제철이 이 씨에게 1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이 씨는 승소한 날을 떠올리며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에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일본에서도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의 만행과 내 어린 시절의 고역을 역시 내 나라의 법원에서 처음으로 알아줬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이 씨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돼야 배상액을 받을 수 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