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채널A 공동취재]佛 ‘재판없는 합의이혼’ 시행 18개월 “판사 대신 부부가 결정” 파경 늘어… 변호사 고용으로 비용부담도 커져
6일 프랑스 파리17구 가정법원 앞에서 만난 크리스틴 씨(48)는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새로운 이혼 제도에 적극 찬성했다. 2016년까지는 이혼을 하려면 모든 부부가 가정법원에 가야 했지만 이제는 부부가 합의한 경우 판결을 거치지 않고 공증인을 통해 이혼을 신청하면 된다. 그는 “이별을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존중이 중요한데 이는 판사가 아닌 당사자 간의 합의로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에서 ‘가족법의 혁명’으로 불리는 재판 없는 이혼이 시행된 지 1년 6개월가량 지나면서 이혼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합의 이혼은 7만1933건(2016년 기준)으로 전체 이혼의 55%를 차지한다.
제도 시행 후 이혼 절차 기간은 1, 2개월로 줄었다. 부부가 양육권과 양육 비용, 재산 분할 등에 대해 합의한 경우 변호사를 선정해 이혼 서류를 작성하면 이혼 숙려기간 15일과 공증인 서류 작업 7일을 거친다. 이어 15일 내 최종 등록이 마감되기 때문에 빠르면 한 달 내에 이혼을 마무리할 수 있다.
법원에 나가 판사 앞에 서서 판결을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까지 사라지면서 여론은 일단 환영이다. 제도 도입 전 여론조사에서 4명 중 3명이 이 제도 도입에 찬성했고, 올 1월 여론조사에선 이혼을 희망하는 부부 84.2%가 이 제도에 찬성했다.
그러나 이혼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이혼 건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제도 시행 이후 공식 통계가 발표된 적은 없지만 이혼 관련 변호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62%가 이혼 건수가 늘었다고 답했다. 파리15구 몽파르나스 타워에 사무실을 둔 변호사 토마 데루소 씨는 기자와 만나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이혼 건수가 확실히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결혼 건수 대비 이혼율이 50%를 넘어선 프랑스에서 더 많은 이혼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이미 변호사를 만나러 올 정도면 이혼에 대해 숙려는 마친 경우가 많다”며 “의무적으로 숙려기간 15일을 거치기 때문에 그 정도면 충분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물론 여전히 아이가 재판을 원하거나 부부 중 한 명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할 경우 판결을 거쳐야 한다. 제도 도입 후 이혼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