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브라이언 페이건 지음·정미나 옮김/568쪽·1만8900원·을유문화사
미국 태평양 연안 샌타바버라 해협에서 서기 400년 무렵부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몰(나무판자로 만든 카누)은 원주민의 교역로를 넓혀줬을 뿐 아니라 참다랑어, 방어 같은 원양어종 서식지로의 진출도 가능하게 했다. 토몰을 연안으로 나르는 추마시족 원주민들. 윌리엄 랭던 킨의 1948년 석판화. 을유문화사 제공
고기잡이의 역사는 인류 역사만큼 길다.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195만 년 전 메기 뼈는 당시 인류가 수심이 낮은 곳을 이동 중인 메기 떼를 붙잡는 매우 초기적 형태의 고기잡이를 시도했음을 유추하게 한다. 100만∼70만 년 전의 고대 인류 호모에렉투스 표본과 함께 발견된 물고기 뼈, 연체류 잔해 역시 인간이 오래전부터 수산물을 먹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고기는 부패가 빨라 한시적으로만 먹을 수 있었지만 190만 년 전 불이 사용됐을 즈음 물고기를 건조해 보관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제대로 된 식량으로서의 지위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만5000년 전, 빙하시대 말기 바닷물 상승으로 습지대, 강어귀가 형성되며 물고기를 잡는 도구들 역시 정교해지기 시작했다.
고기잡이가 문명의 발상에 영향을 미친 정황은 안데스 문명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산업화 이전 문명은 집약적 농경으로 출현할 수 있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페루 연안지대에서 태동한 안데스 문명은 이 가정과 맞지 않는다. 이곳은 기원전 2000년 집약적 농경이 시작되기 전부터 번성을 누리며 사회적 체계가 자리 잡았다. 안초비(멸치류의 작은 물고기), 정어리 등 풍성한 어장에서 1만여 년 전부터 고기잡이를 하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연안지대를 따라 대대적 건축공사가 이뤄져 고기잡이 사회가 형성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안초비가 문명의 기반이 된 셈이다.
어부는 지금껏 역사에서 ‘무명의 존재들’이었고 그들의 역사 또한 학계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고기잡이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의 퍼즐을 다시 짠 이 책을 들여다보다 보면 바다의 역사가 농경에 필적할 만큼 인류 문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고고학, 고기후학, 해양생물학 문헌부터 각 지역의 고대 물고기 뼈까지 찾아다니며 연구한 저자의 바다 냄새 물씬 나는 지적 탐사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