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등 시범운영 현장 가보니
다음 달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앞두고 삼성전자와 LG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자체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법 도입에 앞선 일종의 ‘리허설’이었다.
18일 법 시행을 열흘가량 앞두고 수개월간 근로시간 단축 실험을 진행해 온 주요 기업 사무직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결과 “우려했던 것보다는 괜찮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았다.
물론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 및 고용유연성 확대 등 제도적 보완이 아직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인력에 여유가 있고 수당 감소분을 보전해 줄 수 있는 주요 대기업들에선 시도해볼 만한 변화라는 반응이다. 자율출퇴근제 및 스마트워킹 등 최근 이어져 온 기업문화 개선 시도와 더불어 정착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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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주말 근무나 야근으로 지출되던 추가 수당이 줄어드는 데 따른 비용 절감 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간부급 B 씨는 “주말에도 특별히 일이 없는데 습관적으로 출근해 시간을 때우다 수당만 받고 퇴근하던 사람들이 주 40시간 근무 도입 이후 확실히 사라졌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부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본격적으로 적용했다.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비우던 시간을 아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니 업무 몰입도가 좋은 직원들 사이에선 “주 40시간을 채우는 게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국내 10대 그룹 경영지원팀에서 근무 중인 대리 C 씨는 “처음엔 오후 5시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화장실 볼일도 참아야 할 정도로 부담이 됐는데 몇 개월 해보니 몸과 머리가 적응해 처음만큼 힘들지 않다”고 했다.
기업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대기업 사무직의 경우 대부분 야근수당보다는 연초와 연말에 나오는 보너스가 연봉액을 좌우한다. 이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축도 거의 없는 편이라고 했다. 한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D 과장은 “야근수당이라고 해봤자 1만5000원으로 택시비도 안 되기 때문에 대부분 일찍 퇴근하는 걸 더 선호한다”고 했다.
자율출퇴근제도 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상사에게 따로 보고하지 않고 오전 10∼11시에 출근해도 된다”고 했다. 그 덕분에 불필요한 오전 회의도 기업들마다 대부분 사라졌다. 각자 언제 출근할지 사전에 보고하지 않기 때문에 꼭 필요한 회의는 미리 공지를 하거나 e메일이나 전화 등으로 대체한다. LG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주말 근무를 막기 위해 월요일은 전사적으로 회의를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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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 주 5일제 도입을 앞두고 우려가 많았지만 막상 적용해 보니 큰 어려움이 없었듯 근로시간 단축도 대기업이 주도해 기업문화 전반을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근로시간이 짧아진 만큼 정해진 52시간 이내의 성과를 변별해 낼 수 있는 평가와 책임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지현 jhk85@donga.com·김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