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현숙의 시 ‘공갈빵’의 한 대목이다.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꽃구경 하던 봄날’ ‘어떤 여자랑 팔짱 착, 끼고’ 마주 오던 우리 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 쳤더란다. 헐레벌떡 먼저 달려온 아버지는 ‘우리가 대문 밀치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밥 내놓으라고 ‘시침 딱 갈기고 큰소리쳤고’ 엄마는 웬일인지 상다리가 휘어지게 상을 차렸는데, 그게 등신 같았다는 얘기다.
사연은 조금 더 있다. 우리 엄마는 길바닥에서 얼어붙어 급하게 아버지를 부르다 말았고, 아버지는 모른 척 ‘바바리 날리며’ 줄행랑을 놓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러면서 오늘까지 우리 엄마는 아버지 밥때를 꼭꼭 챙기며 오누이처럼 살고 있다니. 시는 ‘올해도 목련이 공갈빵처럼 저기 저렇게 한껏 부풀어 있는 거야’로 끝난다.
어느 시인은 부부도 ‘함께 있으되 너무 가까이 서지는 말라’고 했다. 사원의 기둥도 서로 떨어져 있고,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칼릴 지브란의 ‘결혼’). 부부조차도 존중하며 경계하며 살라는데, 하물며 직장에서, 대학에서, 예술 현장에서 만난 이성에게 제깟 놈들이 뭐라고 ‘바바리 날리며’ 행패를 부렸을까? 각설하고, “우리 엄마 등신 같았어”는 즉각적으로 배경이 그려지며 웃음이 터지게도, 가슴을 쓸며 안도하게도 하는 감칠맛 나는 시어이다. 나아가 여성인권의 과거와 현실을 함축하여 보여주는 파노라마 같은 문장이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