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삶’ 최은희 별세 ‘사랑방 손님’ ‘춘희’ 등 130편 출연… 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 이끌어 홍콩서 남편 신상옥과 함께 피랍… 8년만에 빈 주재 美대사관 망명 납북 11년만에 다시 고국으로
고 최은희 씨(오른쪽)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1961년). 고 신상옥 감독은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으며, 고인은 옥희 어머니를 연기했다. 동아일보DB
1926년 경기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3년 배우 문정복의 소개로 극단 아랑에 연구생으로 들어가 광복 전까지 활동했다. ‘새로운 맹서’(1947년)로 데뷔해 신상옥 감독의 ‘코리아’(1954년)에 출연했고, 이후 신 감독과 결혼했다. 앞서 18세에 김학성 촬영감독과 만나 결혼했지만 6·25전쟁 때 피란길에서 헤어졌다.
고인은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고 신상옥 감독을 기리는 영화제인 ‘제1회 신필름 예술영화제’ 개막식에 휠체어에 앉은 채 참석했다. 원로 영화평론가 김종원 선생은 “휠체어에 타고 온 최은희 선생이 사람들을 만나며 무척 반가워했다”며 “몸은 비록 나약한 모습이었지만, 정신은 아주 좋은 상태였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최은희 선생은 한국 분단 역사의 희생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겸손하면서 한 시대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연기자였다”고 말했다. 올해 4월 10일에 열린 신 감독의 12주기 추도식에는 신영균 문희 정진우 이장호 씨 등 영화계 원로들이 참여했다.
‘춘희’(1959년) ‘돌아온 사나이’(1960년) 등 고인이 출연한 작품들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성춘향’(1961년)으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고, 이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1961년) ‘열녀문’(1962년) ‘쌀’ ‘로맨스 그레이’ ‘강화도령’(1963년) ‘벙어리 삼룡’ ‘빨간 마후라’(1964년) 등 대작들을 연달아 발표하며 한국의 여성상을 오롯이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65년에는 영화 ‘민며느리’로 한국영화 사상 세 번째 여성감독으로 데뷔했다. 1966년 안양영화예술학교를 설립하는 등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신 감독과는 1976년 이혼했다.
1983년 3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가운데)이 초청한 연회에서 남편 신상옥 감독(오른쪽)과 상봉한 배우 최은희 씨. 동아일보DB
고인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2007년)에서 “김정일은 나에게 온갖 배려와 친절을 베풀었지만 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썼다.
이들은 북한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1986년 베를린영화제 참석 뒤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극적으로 망명에 성공했다. 이후 미국에서 체류하다 1989년 귀국했다. 11년 만이었다. 고인은 ‘최은희의 고백’의 서문에서 “500년을 산 것처럼 길고 모진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1984년 ‘돌아오지 않은 밀사’로 체코국제영화제 특별감독상을, 1985년 ‘소금’으로는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영화제 특별공로상(2006년), 한민족문화예술대상(2008년), 대한민국 무궁화대상(2009년), 대종상 영화공로상(2010년)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균 상균 씨와 딸 명희 승리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8시. 02-2258-5940
조윤경 yunique@donga.com·장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