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준·연세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이제는 협상결과에 대한 평가를 넘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향후 우리 철강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해 봐야 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월 출범 이래 보호무역주의적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한국산 철강재의 88%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부과 중이다. 2016년부터는 불리한 가용정보(AFA), 특별한 시장상황(PMS) 등의 새로운 판정 기법을 적용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급기야 국가안보를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라는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미국이 사문화돼 있던 무역확장법 232조를 들고나와 국가안보를 이유로 철강 수입 규제 조치를 취한 이면에는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이라는 매우 구조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2006년 중국이 철강 순수입국에서 순수출국으로 전환된 이후 중국발 철강 공급과잉 문제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전 세계 조강 생산능력은 2017년 기준으로 23억8000만 t이나 되는데 조강 수요는 16억3000만 t에 불과하다. 글로벌 공급과잉이 총 7억5000만 t에 이르는 셈이다. 이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60%(4억6000만 t)를 넘어서고 있다. 2016년 말부터 철강 글로벌 포럼(Global Forum on Steel Excess Capacity)이라는 다자 간 협의체를 통해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7억5000만 t에 이르는 공급과잉 설비를 단시간에 정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 등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보호무역 조치에 의존하게 되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철강산업도 덩달아 피해를 보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미국의 232조 관세부과 조치가 현실화되자 유럽연합(EU) 역시 철강 수입 급증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26일 철강 세이프가드 조사에 착수했다. 철강 공급과잉에 따른 보호무역의 풍선효과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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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의 주요 경쟁국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산업 전반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보호무역을 이길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다. 조선 등 수요산업의 침체에 따라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는 품목의 경우에는 기업활력제고법 등을 활용해 경쟁열위 기업의 설비를 감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쇳물을 만드는 상공정과 쇳물을 이용해 철강 제품을 만드는 하공정 간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등 철강산업의 재편을 도모할 시점이다. 단기적으로는 높은 수출입 의존도라는 양적 개선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로는 철강 제품 생태계 내의 연계 강화 및 수요산업과의 융합이라는 질적 개선을 통해 우리의 철강산업 생태계를 디지털 기술 기반의 네트워크형 산업 생태계로 바꾸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철강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과 4차 산업혁명이란 도전을 넘어서기 위해서 이제 다시 한 번 힘을 내야 할 때다. 고기능 철강재, 경량 소재 등 첨단 금속소재 개발, 설비의 친환경화 및 스마트화를 위한 기술 혁신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우리 업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 철강산업의 르네상스를 열길 기대한다.
민동준·연세대 신소재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