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나도 당했다)’ 여파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삼킬 태세다. 여권 유력 인사들이 잇따라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민주당이 절대 유리할 것이라던 6·13지방선거 구도 자체가 뒤흔들리고 있다. 보수색채가 강한 TK(대구경북)를 제외하곤 다 차지할 수도 있겠다던 기대감은 이제 “또 다른 미투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바뀌고 있다.
○ 현역 지사에 이어 이번엔 3선 중진 ‘미투’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폭행’ 혐의로 검찰에 자진 출석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10일 오후,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레이스를 한창 진행하던 3선의 민병두 의원을 상대로 한 성추행 의혹이 터졌다. 민 의원은 의혹 제기 1시간여 만에 의원직 사퇴를 발표했다. 현역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첫 미투 폭로였다.
민주당은 다시 한번 발칵 뒤집혔다. 전현희 의원의 불출마,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문으로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열기는 급속히 가라앉았다. 현재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정 전 의원은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성추행 의혹을 반박할 사진을 공개하고, 성추문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민주당 관계자는 “미투 파장에 따라 정 전 의원의 민주당 복당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지방선거 국면에서 원내 1당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재 121석인 민주당은 2당인 한국당(116석)과 불과 5석 차이다. 민 의원이 사퇴하면 4석 차이로 줄어든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10일 민 의원을 만나 “사실관계를 밝히는 게 우선”이라며 사퇴를 만류했다. 민주당 서울시도당위원장인 안규백 최고위원도 의원직 사퇴 철회를 공식 요청했다. 앞서 민주당은 전남지사 출마가 유력하던 이개호 의원에게 출마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선당후사하겠다. 12일 공식 입장을 내겠다”고 했다. 부산시장 출마를 조율했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도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김 장관은 11일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작은 차질도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으로 출마를 접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이 출마하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했던 만큼 민주당은 한숨 돌렸다는 분위기다.
○ 민주당, 지방선거 압승 기대 급랭
그동안 민주당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와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 초대형 호재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세력을 ‘궤멸’시킬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나오곤 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 이해찬 의원 등 지도부에서 ‘20년 이상 연속 집권’ 발언이 나온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았다.
이번 사태가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이후 위축됐던 보수 진영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점도 민주당으로선 불안하다. 일단 민주당은 공천관리위원회 구성부터 마무리하며 향후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고위관계자는 “12일 고위전략회의 등에서 대응방향과 기조를 논의할 계획이다. 미투 운동이 일방적 폭로에 따른 인민재판으로 흘러가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