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54년만에 첫 ‘외부출신 CEO’ 이정인 신임대표
기업 리스크 전문가에서 식품업체 대표로 파격 변신한 이정인 신임 남양유업 대표는 “무엇보다 남양유업의 핵심 리스크를 진단하는 작업에 몰두할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식품의 맛과 향에 무덤덤했던 이 대표가 쉰이 훌쩍 넘은 나이에 취향을 바꾼 건 얼마 전 옮긴 새 둥지 때문이다. 이 대표는 19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사옥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우유와 분유를 빼고 남양유업에서 커피와 치즈를 파는 사실조차 몰랐다”면서 “평생 입에 대지 않았던 제품들을 매일 먹으며 ‘뒤늦은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남양유업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피드백을 챙기는 것도 이 대표의 중요한 일과다.
이 대표는 1987년 안진회계법인에 입사해 기업 리스크자문 본부장, 위험관리 본부장을 거쳐 최근까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부대표를 지낸 기업 경영컨설팅 전문가다. 식품업계와는 거리가 먼 그는 지난달 열린 남양유업 임시주주총회 및 이사회에서 남양유업의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남양유업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대표이사를 영입한 건 창립 5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남양유업의 ‘위기의식’이 강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리점 상대 갑질 논란이 불거지기 직전인 2012년 637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남양유업은 2014년엔 261억 원 적자, 지난해에는 50억 원 영업이익을 냈다. 이 대표가 몸담았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남양유업의 회계감사를 맡았다.
이 대표는 자신을 남양유업의 ‘주치의’로 지칭하고 올해를 남양유업 성장 곡선의 변곡점으로 진단했다. 그는 “남양유업은 2012년까지 고속성장을 해왔지만 이후 성장세가 주춤했다”면서 “지금이야말로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변화를 통해 성장세로 다시 돌아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가 떠올린 탈출구는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소비자’다. 이 신임대표는 “주요 타깃이었던 유아가 급격히 줄었지만 그만큼 노년층이 늘어났다”면서 “건강에 좋은 제품이란 특성을 살려 실버세대를 공략할 제품들을 집중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년층은 단백질과 칼슘, 무기질을 많이 섭취해야 하는데 소화능력이 떨어지기에 우유만큼 좋은 영양 공급원이 없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도 밝혔다. 그는 “지난해 사드 여파로 수출 물량이 반 토막 났지만 중국이나 인도같이 인구가 많은 곳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시장”이라면서 “남양이 갖고 있는 고품질 프리미엄 제품을 내세워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인도네시아와 인도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특히 급격한 출산율 감소로 주력 상품인 우유와 분유의 국내 소비가 줄어드는 데 대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최근에는 해외 제품을 온라인에서 직접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국내 유제품 업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1990년대 90%가 넘었던 우유, 분유 등 유제품 자급률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50% 밑으로 떨어졌다.
그는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유제품 소비량(76kg)이 유럽(300kg)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여전히 국내시장의 성장성은 있다고 본다”라며 “혈압, 당뇨, 치매 억제 등에 좋은 발효유 같은 기능성 유제품 개발로 숨은 시장을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