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생전에 자랑한 막내딸… 능란한 선전선동과 정치로 첫 외교무대에서 금메달 ‘미소 띤 핵폭탄’의 본색은 언론검열과 세뇌공작 주범… 인권유린 혐의로 美제재 대상 北주민 고통 눈감은 진보좌파… 개혁개방 때 떳떳할 수 있는가
김순덕 논설주간
김정일 살아생전인 2001년 러시아 대사가 물었다고 한다. 아들 중 누구를 후계자로 여기냐고. “아들은 모두 ‘게으른 얼간이들’이고 지적 수준이나 성격으로 보면 ‘믿을 만한 후계자’는 딸”이라고 대답하더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북한 주민 100만 명 안팎이 굶어 죽었다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김정은과 스위스에서 보내고 돌아온 김여정을 놓고 김정일은 “막내딸이 정치에 흥미를 보인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어쩌면 오빠보다 정치적 자질을 타고났는지, 은둔의 왕국 처연한 공주 같은 아우라로 김여정은 첫 외교무대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살짝 턱을 추어올린 미소 뒤에는 누구에게도, 단 한번도 고개 숙여본 적 없는 비수가 시퍼렇게 드러난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북핵 위협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지만 “북한이 미국과 우리 동맹국들에 가하는 핵 위협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북한 정권의 타락상을 직시해야 한다”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연설에서 일갈한 바 있다. 프리덤하우스 최근 자료에 따르면 195개 조사 대상국 중 1972년부터 올해까지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 모두 최악의 점수를 받은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안으로는 제 국민을 완전하고도 잔인하게 억압하고, 밖으로는 핵 위협으로 체제 보장과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의 생존 방식인 셈이다.
그들이 원하는 ‘평화체제’로 나아갈 경우, 북한 주민들은 생지옥 같은 인권유린을 언제까지 당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만일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통일’을 열두 번이나 되뇐 대로 한미동맹이 깨지고 북한 주도 통일이 이뤄진다면 탈북 여성 상당수가 중국에서 인신매매와 성매매 희생자로 전락하는 상황이 우리 딸들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땅에선 인권을 부르짖는 좌파 진영이 북한 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표현도 아깝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은 지난해 북한이 최악의 인신매매국이라는 국무부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나도 엄마이기에 인신매매는 정책 우선순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평창 올림픽 폐회식 때 방한하는 그가 탈북 여성 문제에 관심을 표한다면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미국서 ‘북한판 이방카’로 불린다는 김여정이 그래도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만 기다리며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을지 궁금하다.
꼭 통일이 아니어도 좋다. 다만 북한의 인권과 자유라는 기본적 가치에 대해서는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진보적 가치를 자부하는 정부가 최소한 북핵 만큼, 바라건대는 대북 지원 이상으로 진지한 관심을 보였으면 한다. ‘장애인 없는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해온 북한이 평창 겨울패럴림픽에 참가하는 것도 장애인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끊임없는 비판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