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은 이랬다저랬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게 떠드는 말이다. 그런데 원뜻은 반대였다. 가로(橫) 세로(竪)로 거침없이 오가면서 알기 쉽게 조리에 맞게 설명해주는 걸 뜻했다. 석가모니가 불교를 전파할 때 말과 단어를 적절하게 바꿔 가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는데 이를 횡설수설이라고 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100호째인 1920년 7월 25일자 1면에 ‘횡설수설’ 칼럼이 탄생신고를 한다. 첫마디는 “천언만어(千言萬語)가 횡설수설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으나 웬걸…, 바로 다음 문장부터 인광이 번득이고 죽비로 내려친다. “걸핏하면 몇 조 위반을 걸어서 인쇄기에서 떨어지는 신문지를 산더미같이 실어서 경찰서로 잡아가는, 언론자유라는 도금광고판이 잔해도 없이 참혹하게 유린되는 판”이라고 시대를 비판한다. 3·1운동 7주년 축전 게재로 무기정간을 겪고 난 뒤엔 “언론기관은 정지가 아니면 금지”라고 비판해 집필기자가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40년 8월 일제의 동아일보 강제폐간 조치로 횡설수설의 입도 닫힌다. ‘어디 두고 보자’는 외마디를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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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은 올해로 만 98세를 맞는 국내 최장수 칼럼이다. 그러나 언론의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역사의 길이가 아니라 정신이다. 정확 신속 공정을 기하는 책임감이다. 32년 전 동아일보 지령 2만 호 때 횡설수설은 이렇게 썼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 정신을 날로 회춘해가는 신문이야말로 장수를 누린다.” 횡설수설의 혀는 4만 호, 10만 호의 그날까지도 매일매일 젊어질 것이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