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준비 덜된 한국]연명의료법 2월 전면 시행… 서울대병원 3개월 시범사업 결과보니
말기 위암 환자 A 씨(당시 43세)의 마지막은 달랐다. 젊은 시절 호스피스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한 A 씨는 2년 전 위암이 폐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자 “항암제를 끊고 호스피스병동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와 딸은 “항암제를 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 치료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항암제를 계속 맞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늑막에 물이 고여 호흡이 점점 더 곤란해졌다. 지난해 말 A 씨는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 연명의료 중단 결정 가로막는 가족들
같은 기간 이 병원에서 말기나 임종기에 해당하는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300여 명이었다. 이 중 연명의료 상담에 응한 환자는 의료진의 적극적인 권유에도 48명에 그쳤다. 상담 이후 실제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환자는 18명뿐이었다. 허 교수는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 의향을 묻는 것을 가족들이 가로막거나 차일피일 미뤄 때를 놓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임종기 판정을 받은 환자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연명의료를 중단해 달라고 의료진에 요구할 수 있다. 의료진은 가족 등 보호자가 반대해도 환자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가족의 결정권이 더 컸다. 임종기 환자는 의사소통이 힘든 경우가 많아서다.
임종기에 접어들기 전 환자와 가족이 연명의료 의향을 터놓고 상의해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서울대병원이 2012년 말기 암 환자 20명의 가족을 조사한 결과 가족 구성원이 모여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함께 결정한 사례는 7명에 불과했다.
○ “연명의료 중단, 나는 해도 가족은 안 돼”
동아일보가 22, 23일 성인 18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내가 임종기 판정을 받으면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응답은 89.4%였지만 “내 가족의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응답은 75.1%로 차이가 났다.
결국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작성해야 하는 연명의료계획서보다는 건강할 때 미리 써둘 수 있는 ‘사전 연명의료의향서’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공공의료원이나 보건소 등에서 의향서 작성 교육과 접수를 병행해 가족끼리 자연스럽게 관련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해야 임종 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아직 우리 사회가 임종을 터놓고 이야기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연명의료 중단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선 환자 본인이 계획서에 서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환자의 가족이 대신해 의향을 전할 때는 진술서와 확인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내야 한다. 가족 등 대리인의 서명만을 요구하는 미국이나 아예 환자와 가족의 서명을 받지 않는 영국보다 훨씬 엄격하고 복잡하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구호영 인턴기자 고려대 의대 본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