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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원수]목회장님의 ‘정무생활’

입력 | 2018-01-17 03:00:00


정원수 정치부 차장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S주점 P 대표 휴대전화가 울린다. “저녁에 ‘목 회장님’이 귀한 손님 2명과 함께 찾을 것이다.” 단골인 시행사 E업체 이모 회장의 예약 전화다. P 대표는 4번방을 비워둔다. 곧바로 장부에 예약 현황을 메모한다. ‘목 회장님 2名(R4) 이.’

그날 밤 가게에 들른 목 회장은 거침없이 주문한다. “실버오크와 치즈.” 미국 캘리포니아주 내파밸리의 와이너리 이름에서 따온 실버오크.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으로 병당 60만 원짜리다. 뉴욕 맨해튼에서도 백만장자들이 주로 마시고, 국내 골프클럽에서도 VIP 고객들만 찾는다고 한다.

얼마 전 목 회장은 같은 업소에서 셰이퍼, 덕혼 등 병당 40만 원짜리 내파밸리 와인을 주문한 적이 있다. 같은 가격대의 호주산 와인 데드암을 고르는 날도 있었다. 질병에 걸려 죽은 포도나무 중 살아남은 가지에서 딴 열매로만 만든 것이다.

동 페리뇽을 찾을 때도 있다. 스파클링 와인을 개발한 수도승 이름에서 유래한 동 페리뇽은 와인 애호가들이 꼽는 최고급 샴페인 중 하나다. 1952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때 공식 샴페인이었다.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해 유명해진 이 와인도 병당 60만 원이다. 나폴레옹이 즐겨 마셨다는 모에 로제(병당 50만 원)도 목 회장의 주문 목록에 있었다. 프랑스인 클로드 모에가 루이 15세 만찬 때 제공해 귀족들에게 유명해진 샴페인 중 하나다.

목 회장은 당시 서울 목동에 거주한 현기환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별칭이다. 실명을 적을 수 없어 술집 종업원이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재임 때 그는 밤의 직장처럼 이곳을 자주 들렀다. 2015년 9월 7일부터 이듬해 6월 3일까지 38주 동안 33번을 찾았다. 여야 대치 때, 대통령이 순방 중일 때,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198만 원어치를 마셨다. 장부상 비용은 모두 3249만 원. 계산은 이 회장의 법인카드 또는 외상 장부에 달아 이 회장이 나중에 현금으로 일괄 처리했다.

이곳의 초대 손님은 대부분 여당 내 ‘내 편’이었다고 한다. 재임 때 야당 대표의 박근혜 당시 대통령 생일 축하 난을 3번씩이나 거절해 ‘완장수석’으로 불리던 그다. 그러나 재판 때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오랜 친구로부터 술 좀 얻어먹었는데…”라며 억울해했다고 한다. 3, 4차례 이 회장 몫을 빼야 한다며 검찰이 한 계산(2120만 원)에 시비를 걸어 결국 1946만 원만 유죄로 인정받았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수뢰죄 기준(2000만 원 이상)은 피했지만 3년 6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현 전 수석의 지인에게 “와인 애호가였나”라고 물어봤다. “위스키를 좋아했다. 언제 눈이 높아졌나”는 답이 돌아왔다. 주문 내용을 점검했더니 아주 가끔 17년산 위스키를 찾긴 했다. 고향 부산의 양조회사가 제조한 것으로 병당 20만 원이다.


수감 중인 현 전 수석을 포함해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정무수석들이 모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정무수석인 전병헌 전 의원도 수사를 받았다. 한병도 정무수석이 임명된 지 50일이 됐다. 스스로 “술을 ‘한 병도’ 못해서…”라고 말하는 그가 꼬인 여의도 정치를 ‘목 회장’처럼 접대로 푸는 구태 정치를 할 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인태 첫 정무수석 이후 그 자리를 없앤 것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정무수석을 그대로 남긴 의중을 제대로 읽었으면 한다. 개헌과 권력기관 재편, 민생 등 국회가 처리해야 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여의도엔 짙은 미세먼지만 자욱하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