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국제부장
가장 도발적인 제안은 무인기(드론)를 활용해 북한 내 정보 유입을 획기적으로 늘리자는 것이었다. 북한 주민들에게 무선 인터넷 수신기를 제공하고 인공위성으로 정보를 뿌려 김정은 정권이 독점하고 있는 인터넷 사용권과 검열권을 원천적으로 빼앗자는 제안도 나왔다.
우선 답 안 나오는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압박이니 대화이니 하면서 추상적인 담론을 펴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을 아래로부터 직접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연구의 거버넌스(governance)도 최첨단이었다. 재정 지원은 미국 정부가 아닌 전직 미국 대통령의 기념재단, 프로젝트의 실무 책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맡았다. 모두 민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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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통일의 주체는 김정은 정권이 아니라 주민들입니다. 그들이 북과 남의 삶을 ‘비교’하고 남의 삶을 ‘선택’하도록 하면 통일은 금방 옵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바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민간 통일 분야에는 사람도 없고 돈도 부족합니다. 대북 인권단체들을 찾아가 보면 늘 어디서 돈을 구할까 걱정이고 운동가라고 하는 사람들 월급이 180만 원에서 200만 원 한다고 합니다. 반면 정부나 산하기관 등에서 통일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수도 많고 대부분 생계 걱정 없이 살아갑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을 통일 문제의 북측 주체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세미나에 가보면 ‘어떻게 하면 북한 사람들이 위성TV를 보게 할까’ 하는 등의 구체적인 고민은 없고 추상적인 담론만 무성합니다.”
그가 민간 분야의 인력과 재정을 확충해 시급히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활동들은 보수와 진보의 방법론을 포괄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 병사의 남한 질주를 유도한 걸그룹 노래 등을 퍼뜨리는 것도 좋고 겨울 감기가 폐렴과 폐결핵으로 악화돼 죽어가는 북한 취약계층에 페니실린 등 치료약 등을 공수하는 것도 좋다는 것이다.
듣고 있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15년째 북한 문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지만 단돈 1만 원이라도 대북 전단 발송에 보탠 적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 취약계층 지원에 월 1만 원을 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원활동 자체가 끊어지면서 10년째다.
민간이 손놓고 있는 환경은 정부가 통일 논의를 독점하게 만든다. 10년 단위로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정권을 잡고 하는 일이라곤 자기 입맛에 맞는 단체에만 뒷돈을 대주고 줄서기 시키는 것뿐이다. 뜻있는 운동가들은 현장을 떠났고 지금도 짐을 싸고 있다. 그들에게, 그리고 좋은 깨달음을 준 태 전 공사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새해엔 북한 민주화 운동에 얼마라도 보태기로 마음먹었다.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