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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민’이란 이름은 내게 ‘궁금함’이란 의미로, 그것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남아 있었다.
제이민을 뮤지컬 무대에서 처음 본 것이 언제였을지. ‘올슉업’이었던가, 아니면 ‘인더하이츠’? 어쩌면 ‘꽃보다 남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삼총사’와 ‘잭더리퍼’는 확실히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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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오지민. 꽤 긴 연습생 기간을 거쳤고,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2007년 데뷔했다는 것. 그리고 2012년 ‘잭더리퍼’의 글로리아 역에 캐스팅 되어 뮤지컬 배우로 첫 선을 보였다는 것.
1988년 태생이니 올해 우리나이로 서른이 되었다는 것까지.
학습은 그때그때마다 단편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제이민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기억정보는 분쇄기를 통과한 종이처럼 조각조각이 나 있었다.
어쨌든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헤드윅’을 보았고, 이츠학으로 분한 제이민이 헤드윅에게 가발을 받아 들고 휙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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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한 배우의 연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감동을 먹어버린 한 기자의 사심어린 기록이자, 제이민이란 인물에 대해 갖고 있던 정보의 마지막 퍼즐을 끼워 맞춘 작업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의 불빛이 건너다보이는, 창문이 대책없이 커다란 카페에서 제이민을 만났다.
-‘얼라이브’, ‘집앞에서’, ‘후’와 같은 노래를 불렀죠. 지금까지 발표한 곡들을 보면 대부분 발라드였어요. 사람들은 제이민이란 가수에 대해 ‘느린 템포’, ‘맑은 음색’, ‘섬세한 표현’과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락 음악으로만 채워진 헤드윅과는 확실히 거리가 좀 있어 보이는군요. 예를 들어 이츠학을 맡았던 서문탁씨와 비교하면 제이민은 남극과 북극처럼 떨어져 있다고나 할까.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군요. 서문탁 선배님은 무척 파워풀하고, 목소리도 굵으시죠. 제 목소리 자체는 곱고 맑은 편이고요. 하지만 저도 발라드 곡을 내기 전에는 시원하게 내지르는, 강한 사운드의 노래들도 제법 불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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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아마 드라마 OST 때문에 발라드 곡들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신 탓이겠죠.”
-그러고 보면 레드제플린의 팬이라고.
“맞아요. 그것도 초창기 음악들. 레드제플린의 베스트앨범을 예로 들면 ‘어얼리데이즈’를 좋아해요. 두 장짜리 앨범인데, 후반기 음악들이 담긴 두 번째 앨범에는 손이 잘 안 가요. 올드하죠(웃음).”
-하는 음악과 좋아하는 음악이 다른 건가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실 가수로 활동하는 데에도 약간의 괴리감이 있긴 해요. 제가 표현하기 쉬운 곡들은 대부분 아름답고 맑죠. 그런데 좋아하는 건 또 굉장히 강한 사운드거든요. ‘이걸 어떻게 좀 믹스할 수 없을까’ 고민도 했죠. 강한 사운드의 맑은 노래는 불가능한 걸까?”
-흥미롭군요. 좀 더 듣고 싶은데요.
“그렇다고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여하튼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에 연습생으로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감성이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컨트리한 감성이라는지, 락 쪽이라든지. 댄스음악이 주류인 시대에 비주류 음악을 좀 더 좋아했던 거죠.”
-SM엔터테인먼트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가요?
“제의를 받았어요. 오디션을 봐 보자고. 가서 노래를 불렀고, 녹음이란 걸 해봤고, 회사에 들어가게 됐죠.”
-일본에서 데뷔를 한 것도 특이한데요.
“회사에서 연습을 하다가 일본에서 오신 관계자 분들 눈에 띄었나 봐요. 이후 회사와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저도 해봐야 아는 거니까 ‘가봅시다’ 이렇게 된 겁니다(웃음).”
-제이민이란 예명은 본명(오지민)에서 딴 거겠죠?
“한국과 일본 양쪽 나라에서 모두 무대에 설 수 있는 예명을 고민했죠. 지민이니까 J-MIN. 회사에서 투표를 했어요.“
-헤드윅 공연을 봤습니다. 이츠학은 어쩐지 눈보다 마음이 먼저 가는 캐릭터랄까. 그저 헤드윅의 보조역할로 서 있는 캐릭터라고는 볼 수 없죠.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 그렇게 연기하는 이츠학도 없지는 않겠지만. 과연 이츠학의 어떤 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나요?
”이츠학의 어떤 면 … 흐음 … 사실 이츠학을 이츠학으로서 보여주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보여줄 수 있는 타이밍도 적고, 조명이 들어오거나 집중되는 장면이 거의 없으니까요. 이츠학이 결국 자신의 얘기를 풀려면 헤드윅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죠.“
-흐음 … (귀를 기울인다)
”저는 기본적으로 … 하아! 참 이츠학은 하기가 방대하고 장황한 얘기라. 헤드윅과 거의 같은 평행이론?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이츠학은. 헤드윅과 같은 성소수자이고,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또 자신이 태어난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모습에서 정체성을 찾는 사람이죠.“
-네에 그렇죠 … (계속 귀를 기울인다)
”그러니 이츠학의 눈에 헤드윅이란 사람이 얼마나 멋있게 보이겠어요? 헤드윅이 가진 세계관까지 멋있었을 테고. 그래서 존경하고, 많이 사랑했을 거라 생각해요. 이런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다 … 물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없이 여장을 포기해야 했지만. 아마 스스로에게도 큰 괴리였을 테죠.“
-지금까지 보아온 이츠학들은 헤드윅을 분노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제이민의 이츠학은 사랑이로군요?
”헤드윅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이츠학은 떠났을 거예요. 여권 같은 거야 얼마든지 훔칠 수 있고, 심지어 빼앗을 수도 있겠죠. 이츠학은 헤드윅의 모든 것을 본 사람이에요. 그의 히스테릭한 모습도 알고, 외로움에 혼자 우는 것도 봤을 테고. 심지어 토미가 나중에 알게 되었던 ‘1인치’도 알고 있고.“
-마지막에 이츠학이 헤드윅에게 가발을 건네받고,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가고, 다시 뛰어나가기까지. 불과 1분 정도의 시간이지만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경험을 했습니다만.
”와! 그렇게 느끼셨다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정말 많은 걸 느끼는 순간이잖아요. 짧은 순간 안에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제 이츠학이 다른 이츠학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어요. 다른 분들도 ‘그건 없던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어떤 장면을 말하는 거죠?
”헤드윅이 자신의 가발을 건네줄 때 저는 한 번 거절을 해요. 못 받겠다고. 그 장면에서 많은 분들이 울컥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는 그게 헤드윅을 사랑했던 ‘노선’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내 자유도 중요하지만, 내가 떠나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하지?“
-흥미로운 해석인데요.
”배우는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주변을 대치시키잖아요. 전 헤드윅과 이츠학을 엄마와 저의 관계에서 찾았어요.“
-멀리 못 갔군요(웃음).
”하하! 제가 올해 서른이에요. 엄마와 같이 살고 있죠. 독립을 하고 싶긴 한데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세요. 저도 제 세계가 있으니 엄마가 하라는 대로만 살 수도 없고. 집에서 부딪칠 때가 많죠. 물론 나가서 살려면 충분히 살 수 있어요. 짐을 싸고 ‘엄마, 안녕’하고 나오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떠나지 않는 거죠.“
-확실히 와 닿는 사례로군요.
”헤드윅에게 가발을 받았을 때, 떠나기 힘들지만 또 내 삶을 살아야 하니까 마음을 먹고 떠나는 거죠. 그제서야 비로소 모든 게, 그토록 갈망했던 게 몰려오면서, 뛰어 나가게 되는 겁니다.“
-어머니께서 ‘독립하라’고 하면 한번은 거절할 건가요?(웃음)
”서른넷이 되면 독립해도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쯤 되면 그냥 날 거둬 달라‘고 엄마에게 말했어요. 흐흐“
<주 : 기사에 등장하는 제이민의 모친은 1980년대 중반 ’그것은 인생‘ 등의 히트곡을 남긴 가수 최혜영씨이다. 제이민은 방송에 출연해 ’가수 데뷔 전 엄마가 반대했는데 내가 고집을 부려 데뷔하게 됐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 인터뷰 기사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제공 ㅣ 쇼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