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김기태 감독.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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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시즌 중의 기억이다. KIA 정회열 2군 감독이 보고 차, 김기태 감독을 찾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김 감독이 불현듯 말했다. “그런데 한번 가보셨어요? 사실 내가 가보고 싶은데….” 그들이 갔으면 하는 곳은 국토의 동쪽 끝 독도였다. 이유는 하나, KIA 내야수 윤완주가 독도수비대로 군 복무 중이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외로운 섬에서 야구와 떨어져있는 윤완주를, 어떤 식으로든 팀이 잊지 않고 있음을 전하고 싶어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바탕은 배려다. 배려는 인간을 바라보는 관대한 시선에서 나오는 법이다.
#2013년 LG는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했다. 김기태 감독은 LG를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감격의 플레이오프(PO) 직행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LG는 정작 PO에서 두산에 1승3패로 허무하게 패했다. 1승2패로 몰린 상황, 김 감독은 PO 1차전 선발이었던 류제국을 4차전에 올리지 않았다. 지더라도 선수를 보호하겠다는 소신이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해도 ‘자기 새끼’를 챙겨줄 수 있어야 리더다. 패장이 될지언정, 사람을 남겼다. 2014시즌 중 돌연 김 감독이 팀을 떠났을 때, LG 선수들이 보여준 안타까움이 이를 증명한다.
버나디나의 세리머니를 따라하는 김기태 감독(가운데).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김 감독은 요미우리 코치 연수 초반 점퍼를 꼭 입고 다녔다. 일본의 폭염은 한국 이상이다. 아무리 더워도 점퍼를 벗지 않았다. 당시 요미우리 감독인 하라 다쓰노리가 하도 이상해서 물었다. 이유가 김 감독다웠다. “야구를 한 이래 세 자릿수 등번호 유니폼을 입은 적이 없다. 더워죽더라도 이런 유니폼을 보여줄 수 없다.” ‘팀에 필요한 일원답게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는 김 감독의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김 감독은 결국 두 자릿수 유니폼 백넘버를 쟁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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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