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방한하는 트럼프, FTA 재협상 등 여러 이슈 들고나올 듯 트럼프 특유의 협상테크닉에 과민대응하지 않는게 중요 통계 들이밀며 설득하지 말고 한미민관협력委 설립 제안 등 통 큰 자세로 맞받아치면 우리 실속 챙길 수 있어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번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전문가들과 이야기해 보고 받은 메시지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수석대표였던 웬디 커틀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그스텐 등을 만나 보니 모두 팔짱을 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었다. 조지 W 부시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는 전문 관료와 싱크탱크가 대외전략을 세우고 추진하면 백악관은 대개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는 것이다.
지금 워싱턴의 문제는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확신범적 무역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관료, 전문가들과 자유무역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자신이 국무부나 통상관료들보다 협상을 더 잘한다고 자부하며 완전히 톱다운(top-down)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딸 이방카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해 버리고, 북한에 유연한 제스처를 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경질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다음 특징은 ‘싱크빅(think-big)’인데 원하는 것을 슬쩍 던져주며 협력하겠다는 소프트 시그널(soft signal)을 보내면 의외로 너그럽고 통 크게 협상한다.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펄펄 뛰다가도 지난봄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줄이겠다는 시그널을 보내자 등까지 두들겨 돌려보내지 않았는가.
다음 달 서울에 오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문재인 대통령과 세 번째 만난다. 북핵, 한미 동맹 등 산적한 이슈가 많지만 그간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한미 FTA 재협상을 다시 들고나올 것이다.
이때 최근 줄어든 대미 무역적자 통계를 들이밀며 설득하려 든다거나, “FTA가 얼마나 두 나라에 호혜적인지 경제 분석을 해보자”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FTA의 경제적 효과를 가지고 다투면 서로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분석하기에 해답이 안 나온다.
그 대신 이번에는 우리 대통령이 트럼프보다 더 통 크게 맞받아치면 어떨까. 트럼프가 그렇게 걱정하는 무역 불균형 문제에 대해 “임기 중 대미 무역흑자를 대폭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통 큰 소프트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무역 불균형이 한국 정부를 압박해 FTA 조항 몇 군데 뜯어고친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 보다 많은 미국 물건을 사고 미국에 투자하게 해야 되는 것이라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이번 재협상을 굴욕이라고 하는데 진짜 굴욕인지 아닌지는 결과를 보고 말해야 한다. 어차피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주고받는 것이니 생색내며 좀 던져주고 실속 있게 더 많이 챙기면 된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쓰는 “한미 FTA를 폐지하겠다”는 식의 블러핑에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강한 정치적 파워를 가진 미국 농산물 수출업계의 반발을 고려할 때 미국의 협상 결렬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준비만 잘하면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을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북핵 문제건 통상이건 제일 나쁜 것은 협상하지 않는 것이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