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태릉선수촌 시대… 왕년의 태극전사들이 되돌아본 지난날
충북 진천선수촌 개촌식을 하루 앞둔 26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행정동 모습. 태릉선수촌 전체를 설명하는 안내표지판 뒤로 오륜 마크가 보인다. 부지 면적 31만969㎡에 훈련시설 12개소를 갖췄던 태릉선수촌의 최대 수용 인원은 400여 명이었다. 반세기 넘게 한국 국가대표의 산실로 자리매김해 왔던 태릉선수촌의 기능은 대부분 진천선수촌으로 넘어가지만 시설 전체의 존폐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주요 인사들이 개촌 이후 국제대회를 앞두고 있을 때면 태릉선수촌을 종종 방문했다. 〈1〉고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연단 위)은 1966년 서울 태릉선수촌의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2〉고 김영삼 전 대통령(가운데)은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과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있던 1994년 1월 이곳을 찾아 국가대표선수들과 조깅을 했다.〈3〉고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 또한 부산 아시아경기대회를 한 달여 앞둔 2002년 8월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당시 농구 국가대표 서장훈을 격려했다. 동아일보DB
‘작은 거인’으로 불린 한국 레슬링의 전설 심권호(45)는 태릉선수촌에 인접해 있는 불암산을 악몽으로 기억했다. 1990년부터 10여 년 동안 대표선수로 뛰며 세계 최초로 2개 체급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그였지만 영광의 순간은 거저 오지 않았다. 심권호는 태릉선수촌에서 불암산 헬기장까지 왕복 8km가 넘는 종주 코스를 1000여 번 오르내렸다.
일반인이면 왕복 1시간은 훌쩍 넘길 이 코스를 태릉선수촌에서 합숙 중인 대표팀 선수들은 주말마다 20분대에 주파했다. 심권호는 “레슬링, 복싱, 쇼트트랙 선수들이 가장 빨랐다. 세 종목 코치들끼리 담당 선수 기록으로 내기를 걸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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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 스타 이용대(요넥스)는 중3 때 처음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15년을 보냈다. 이용대는 “룸메이트가 13세 위인 하태권 선배님(요넥스 감독)이었는데 오후 9시면 취침을 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철저한 자기 관리를 배웠다”며 “웨이트트레이닝과 트랙 뛰기가 너무 싫었는데 유도, 레슬링 선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이용대는 또 “선수촌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식당이었다. 자장면, 짬뽕, 스테이크가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 최초로 겨울올림픽 금메달(1992년 알베르빌)을 딴 김기훈(울산과학대 교수)은 태릉선수촌을 배고픔의 공간으로 기억했다. 고3 때 입촌해 10년 가까이 훈련했던 그는 “혈기왕성하던 나이에 운동량도 많다 보니 항상 배고팠다.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고도 밤이 되면 배가 고파서 피자나 족발 등을 시켜 먹었다”며 “외부 음식 반입이 안 되니까 철조망 사이로 배달음식을 가져다 먹곤 했다”고 했다.
양궁 여제 기보배(광주시청)에게도 태릉선수촌은 자부심의 공간이다.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2관왕에 올랐지만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 대표 선발에서 탈락했다. 기보배는 “훈련이 워낙 힘들다 보니 태릉선수촌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 처음에는 홀가분했다. 하지만 막상 대표 선수들이 그곳에서 땀 흘리는 모습을 밖에서 전해 들으니 그리웠다”고 회상했다.
태극마크 출신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이 철거될 예정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용대는 “청춘 대부분을 보낸 공간이고, 한국 스포츠 발전을 이끈 역사적인 장소가 사라진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태릉선수촌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존치시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김재형 monami@donga.com·김종석·이헌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