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고대민족역사편년총서 주장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 2010년 개장한 백제문화단지. 왕궁인 사비궁, 사찰인 능사, 주거공간인 생활문화마을, 백제 초기의 위례성 등을 재현해 놓았다. 최근 중국 창춘사범대 장웨이궁 교수는 백제역사편년을 집필하고 “백제는 중국사”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DB
고구려, 백제, 부여 역사를 중국사 연호(年號) 중심으로 서술한 총서에는 중국 학계에서 처음으로 백제의 역사가 초기부터 중국사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집필을 주도한 중국 창춘사범대 장웨이궁(姜維公·55) 교수는 ‘백제역사편년’ 속 18쪽에 이르는 ‘백제기원문제탐토(百濟起源問題探討)’라는 제목의 소논문에서 “우리 중국 학계는 그간 백제를 한국사 범주로 인식했지만 백제 전기 역사는 중국사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
장 교수는 “백제가 4세기 중엽 한강 유역으로 주무대를 이동했어도 백제가 중국사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원전 2세기부터 4세기 중엽까지 한강 유역이 중원(中原) 왕조의 소유였기 때문이라는 게 장 교수의 주장이다.
백제 멸망 당시 당(唐)이 백제 지역에 웅진도독부를 세워 ‘백제가 멸망하며 중국에 예속됐다’는 주장은 과거 중국 정부가 주도한 ‘동북공정(東北工程)’ 당시에도 있었다. 하지만 초기부터 백제가 중국사라는 주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소논문에는 백제의 기원 자체가 현재 중국 지린성 지린시에 있던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것임을 강조한다. 총서의 다른 책인 ‘부여역사편년’에서는 부여에 대해 ‘아국(我國) 동북소수민족정권’, 즉 중국사로 소개했다. 총서를 한데 모아 보면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백제도 결국 중국사라는 논리다.
지난해 6월∼올해 3월 중국 사회과학기금을 받아 출간된 동북고대민족역사편년총서. 왼쪽부터 고구려, 백제, 발해, 부여, 거란역사편년. 육군사관학교 제공
국내 학계에서도 중국사로 인정하는 거란을 부여, 고구려, 백제, 발해와 함께 총서로 묶은 부분도 눈에 띈다. 고구려, 백제, 발해, 부여역사편년은 서한(西漢), 수(隋), 당 등 중국 고대국가 연호 중심으로 사료가 정리됐다. 하지만 ‘거란역사편년’은 거란이 국가를 세운 900년대 이후부터 ‘거란태조야율아보기신책원년(916년)’ 같은 거란 고유의 연호가 사용됐다.
이 교수는 “총서는 부여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갈라져 나왔고, (고구려 이후 등장한) 발해가 중국사로 인식되는 거란에 흡수되면서 결국 중국 동북 고대국가 모두 중국사의 일부라는 이해체계를 보여주고 있다”며 “총서를 통해 한국사를 접하는 중국 일반인 및 학자들은 신라를 제외한 한국 주요 고대국가 모두가 중국사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