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반도 문제 개입에 소극적이던 유럽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과 북한과의 설전이 한반도를 넘어 세계 평화에 심대한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14일(현지 시간) 이례적으로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정치안보위원회의 특별회의를 개최한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EEAS)은 “북한 상황과 관련해 다음 단계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을 충실히 이행하는데 초점을 맞췄던 EU가 더 적극적인 중재를 모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럽 내부에서는 아직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세계 빅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관여된 이번 긴장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크다. 지그마이어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은 9일 우간다 방문 도중 기자들과 만나 “1차 세계대전처럼 전쟁 속으로 몽유병 환자처럼 끌려 들어갈 우려가 있다. 이번 전쟁이 현실화된다면 핵무기가 개입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독일과 영국 등 일부 유럽국가들은 2000년대 초 비판적 개입 정책에 따라 북한과 상호 수도에 공관을 개설한 이후 끈을 계속 유지해 왔다. 5차 핵실험 이후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북한 공관 폐쇄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연결고리는 있어야 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루마니아 폴란드와 같은 구동구권과 스웨덴 등에서는 북한이 공관을 두고 나름 외교활동도 벌여와 대화의 물꼬를 틀 공간은 있다.
유럽은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수위를 톤다운 시키는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엔을 중심으로 질서 있는 대북 압박이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적 옵션을 강조한 돌출 과격 발언으로 오히려 흐트러졌다는 분석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1일 “전쟁이 나면 미국 편을 들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직접적인 답은 피한 채 “말로 긴장을 높이는 건 잘못된 답으로 어떤 문제도 풀리게 할 수 없다”고 미국을 간접 비판했다. 이날 회견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군사적 해결책이 완전히 준비됐다”는 강경 입장을 밝힌 직후 이뤄졌다.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김정은처럼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르피가로지는 “파리 런던 베이징이 트럼프에게 게임을 자제하도록 압박을 넣고 있다”고 보도했고, 영국 가디언지는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이 이 사태를 촉발했다”고 지적했다. 유럽 언론들은 “미국과 북한의 두 지도자 모두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이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계속 전하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