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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후 못 받은 월급 달라는데 일한 시간 직접 증명하라니…”

입력 | 2017-07-19 03:00:00

급증하는 임금체불에 직장인들 한숨




올 2월 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퇴직한 A 씨(39)는 요즘 하루 종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지고 있다. 옛 동료와의 대화 내용과 근무 영상 등을 찾기 위해서다. 그가 회사를 그만둔 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밀린 급여 탓이다. A 씨가 퇴직할 때 받지 못한 급여는 약 3800만 원. 그는 생활비가 부족해 은행돈 4000만 원까지 빌렸다.

결국 A 씨는 최근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을 신고했다. 그러자 회사의 태도는 더욱 차가워졌다. 회사 측은 A 씨의 초과근무 자료는 물론이고 4대 보험 가입증명서 등 기본 서류마저 발급을 거부했다. A 씨는 어쩔 수 없이 SNS를 검색하고 옛 동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함께 근무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받고 있다.

근로자 처우 개선을 위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됐지만 그나마 정해진 임금도 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근로자가 늘고 있다. 1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임금체불 신고는 2013년 18만1182건에서 지난해 21만7530건으로 늘었다. 체불 총액도 같은 기간 1조1930억 원에서 1조4286억 원으로 2000억 원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근로자가 체불된 임금을 받으려면 말 그대로 알아서 뛰어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임금체불 등 분쟁이 생겼을 때 회사 측이 근무시간 정보 등을 근로자에게 반드시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가 근로자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해도 이를 제재할 규정이 없다. 기업들은 이런 허점을 노리고 근로자들이 스스로 근무시간을 증명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면 체불 임금을 다 받기가 어렵다. 대기업에서 5년 동안 근무했던 B 씨(28)는 평소 출퇴근 시간을 따로 기록하지 않아 휴일근무, 야근 등과 관련된 서류를 받지 못했다. B 씨는 “노무사를 찾아 가까스로 증빙 서류를 만들었지만 휴일근무 등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해 당초 받아야 했던 급여보다 500만 원을 덜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근무시간을 증명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까지 생겼다. 15일 출시된 ‘돈내나’라는 앱은 직장과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대조해 근로자가 실제 근무한 시간을 알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한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임금 지급 때 회사가 근로자에게 근무일 및 근무시간 등의 자료를 함께 제공해야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근로자는 근무시간을 증명하기 위한 수고를 덜 수 있다. 그러나 법안은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탄핵과 대선이 이어지면서 제대로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심재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자가 자료를 요청할 때 회사가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관련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이정윤 인턴기자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