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주변에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가 많았다. 알고 보면 고운 심성을 가진 아이인데 거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한 친구는 자신을 비난한 교사에게 욕설과 함께 마시던 음료수를 집어던졌다. 하얀 원피스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던 포도 맛 탄산음료의 향과 빛깔이 기억에 생생하다.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학교가 없기를 바라지만 학교 현장은 갈수록 더 무너진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열악한 지역의 일반고, 더 나아가 중학교의 상황이 심각하다. 오죽하면 “차라리 자 주는 학생이 제일 고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새 정부는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외고 폐지는 ‘똥통학교’의 교육을 살리는 데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외고 간판을 내린다고 우리 교육의 진짜 과제인 이런 학교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낭만적 환상에 가깝다.
일종의 ‘똥통학교 구조대’ 역할을 할 교사의 조건은 △교사의 사명감 △학생의 가정적·경제적 환경까지 꿰뚫는 내공과 전문 상담능력 △강남 엄마 능가하는 입시전문가 수준의 진학·진로지도 테크닉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교사가 발령 기피 학교에 스스로 올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파격적인 인사 인센티브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수준 높은 선발 기준을 마련한다면 기꺼이 구조대가 되겠다고 나서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고’라고 하지만 그 일반고가 다 같지 않다는 건 국민 누구나 안다. 이 현실을 부정한 채 외고 자사고만 없애면 평등교육이 이뤄진다고 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강남 특별고’ 전성시대를 탄생시킬 뿐이다. 새 정부는 ‘똥통학교’만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강남 엄마와 붙어도 이길 수 있는 공교육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 하지 못한다면 학교의 낡은 벽마다 붙어 있는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이란 구호는 아이들을 기만하는 사기 구호일 뿐이다. 새 정부가 반드시 역전의 성공신화를 쓰기를, 그래서 진정으로 국민을 위했던 교육 정부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