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울트라트레일 100km 뛰어 보니
호주 시드니에서 서쪽으로 100km가량 떨어진 세계자연유산인 블루마운틴 산악지대 시닉월드에서 울트라 트레일러닝 100km 부문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일출을 전후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카툼바=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지난달 20일 오전 6시 20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카툼바의 시닉월드. 호주울트라트레일(UTA) 100km 부문에 도전한 선두그룹 선수들이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남자 941명, 여자 339명 등 1280명의 선수가 7개 그룹으로 나뉘어 순차적으로 출발했다. 호주의 대표적인 국립공원이자 세계자연유산인 블루마운틴 산악지대를 오르내리는 극한의 레이스에 돌입한 것이다. 30여 개국에서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에서는 기자를 포함해 한국에서 날아간 9명, 재외동포 2명 등 11명이 도전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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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내리막을 반복할 즈음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블루마운틴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늘 푸른 나무인 유칼립투스(Eucalyptus)에 태양빛이 반사되면서 계곡과 숲에 파란빛이 감돌았다. 유칼립투스 세계 최대 자생 군락지인 블루마운틴의 이름이 붙은 이유다. 선명한 파란빛은 아니었지만 구름 사이로 보이는 진한 파란 하늘과는 달리 은은한 빛을 띠었다. 유칼립투스는 수십 m에 이를 정도로 하늘 높이 시원스레 솟았고, 거무튀튀한 나무껍질을 벗고 우윳빛 속살을 드러냈다. 성인 4명이 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만큼 거대한 유칼립투스도 군데군데 보였다.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주식으로 한다는 코알라는 보이지 않았다. 유칼립투스 잎을 비벼 보니 한라산 특산수종인 구상나무와 비슷한 상큼한 향기가 났다. 호주에서는 유칼립투스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을 일상에서 사용한다. 살균과 해충 퇴치, 공기청정 등으로 사용하는데 국내에서도 수입해서 판매한다. 해발 1000m가량의 고지에 서자 적갈색의 사암(砂巖)지대 절벽과 함께 밀림이 끝없이 펼쳐졌다.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숲 어딘가에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울레미 소나무(Wollemia nobilis)’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살짝 흥분됐다.
고요한 숲의 정적을 깨는 이는 은방울 굴러가듯 낭랑하거나, 때론 날카롭게 울부짖는 새들이었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소리다. 마치 회초리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듯 강한 소리를 내는 동부채찍새(Eastern Whipbird) 울음은 신기하기만 했다. 공룡시대 익룡의 소리인 듯한 상상을 하게 하는 코카투(유황앵무)는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요란했다. 길가에서는 뱅크시아계통의 식물에 노란 꽃이 피었다. 꿀샘이 풍부해 다양한 종류의 새를 블루마운틴으로 불러 모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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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극복하는 도전
호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인 UTA 100km 부문에 참가해 완주한 본보 임재영 기자.
마지막 고비는 ‘퍼버 계단(Furber step)’으로 불리는 가파른 오르막 지역. 1908년 당시 계단을 조성한 토지조사원의 이름을 딴 곳으로 높이 300m, 길이 1km에 921개 계단이 놓여 있는 구간이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듯 무겁기 그지없었다. 중도 포기의 창피함, 완주 후 마실 시원한 맥주 등을 떠올리며 견뎌낸 끝에 결국 결승선을 통과했다. 기록은 21시간 59분28초. 제한시간인 28시간 이내 완주에 성공했다.
이 대회는 호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트레일러닝대회로 국제트레일러닝협회(IRTA)가 인증한 울트라트레일월드투어(UTWT) 시리즈 대회다. 2008년 참가자 174명으로 처음 대회를 치른 이후 올해로 10회를 맞았다. 코스의 누적 해발고도는 4156m로 한라산 성판악탐방안내소를 출발해 정상을 3∼4회 왕복해야 하는 난도다. 이번 대회 1위는 8시간52분을 기록한 미국인 팀 톨렙슨이 차지했다. 100km 부문 외에도 50km, 22km 등의 레이스가 펼쳐졌다. 전체 대회 참가자는 5000여 명에 이른다. 이번 대회를 위해 500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으며 식수는 물론이고 콜라 1000L, 수박 1200kg 등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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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19분 만에 완주한 신순철 씨 “산, 숲, 바람과 함께 달리는게 트레일러닝 매력”▼
단신이지만 언뜻 보기에도 다부진 몸매의 신순철 씨(51·사진)는 100km 울트라 트레일러닝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아마추어들에게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강도를 높여 나가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조언을 했다. 신 씨는 호주 시민권자로 이번 대회 100km에 참가해 62위인 12시간19분25초를 기록했다.
신 씨는 정보기술(IT) 전문가로 기업에 다니다가 경영학 공부를 하기 위해 호주로 건너온 뒤 1996년 그대로 눌러앉았다. 2002년부터는 한국인들의 호주 정착을 돕는 이민법무사 활동을 하고 있다. 테니스와 수영 등을 즐기다가 호주에서 트레일러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3년 호주울트라트레일 100km 대회에 처음 도전한 뒤 매년 참가해왔다.
신 씨는 트레일러닝을 하면서 제주에서 열린 국제트레일러닝대회 100km, 전주순례길 100km 레이스 등에 참가했다. 그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트레일러닝을 시작했다”며 “산과 숲 바람과 함께 달리며 자연의 일부가 되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호주와 유럽 등지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전 7시에 시작하는 파크런(parkrun) 대회가 있다. 공원 5km 달리기로 자원봉사자에 의해 경기가 진행된다. 그는 “한국에서도 공원과 체육관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트레일러닝 참가하려면▼
방수재킷-나침반-랜턴 등 필수 장비 없으면 실격
포장길을 달리는 일반 마라톤과 달리 트레일러닝(trail running)은 산과 들 계곡 사막 밀림 등 비포장 길을 달리는 아웃도어 스포츠다.
유럽에서는 새로운 트레일러닝 대회가 속속 생겨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 아시아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등산로나 트레일을 기반으로 코스가 만들어진다.
모험적이지만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도로 마라톤과 달리 장비에 대한 점검이 까다롭다.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아예 참가 등록도 할 수 없으며 레이스 도중 장비 점검에서 필수 품목이 없으면 감점을 받거나 실격 처리된다.
대회마다 조금 다르지만 방수 및 방풍 재킷, 비상식량, 압박붕대, 호루라기, 생존담요, 헤드랜턴, 식수, 나침반, 휴대전화, 모자 또는 버프 등은 필수 품목이다.
이번 호주 100km 대회에서는 특이하게도 야광조끼가 필수 품목에 포함됐다. 아스팔트 도로와 밀림 속에서 선수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주최 측이 정한 것이다.
이 밖에도 아마추어 선수들은 야간에 레이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분의 랜턴 배터리, 방한 장비 등을 갖춰야 한다.
카툼바=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