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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백인 동성애자로서 법과 차별을 말하다

입력 | 2017-05-27 03:00:00

◇헌법의 약속―모든 차별에 반대한다/에드윈 캐머런 지음·김지혜 옮김/416쪽·1만8000원·후마니타스




저자는 복합적 정체성을 지녔다. 인종차별 제도로 악명 높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보육원에 보내질 정도로 가난했다. 유능한 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다 고등법원 판사가 됐지만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동성애자다. 그는 남아공 최고 법원인 헌법재판소 현직 재판관 에드윈 캐머런이다.

남아공은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비백인(非白人)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차별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나라다. 동시에 1994년 세계 최초로 성소수자에게 평등을 약속하는 차별 금지 조항을 헌법에 명시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이중적 법체계 속에서 특권자인 동시에 소수자인 그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을까.

저자의 경험을 담은 책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백인으로서 비백인 차별에 항거했던 인권 변호사 시절의 경험과 HIV에 감염된 동성애자로서 성 소수자 권익을 위해 투쟁을 벌였던 개인적 역사.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시절 흑인의 이동을 금지했던 ‘통행법’ 폐지 재판, 만델라의 변호사 자격 박탈을 둘러싼 재판, HIV 감염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재판, 에이즈 치료제의 보급을 막았던 ‘민주 정부’와의 법정 투쟁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2014년 영어로 출간됐다가 올해 한국어판으로 나왔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한국도 남아공처럼 법치주의를 준수하는 입헌 국가로서, 헌법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고 적었다. 하나 한국의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최근 군사법원은 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동성애자 장교에게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