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룡 한국전력 마라톤 감독.
김재룡(51) 한국전력 마라톤 감독이자 한국육상연맹 마라톤위원장은 국내 코스 최초로 2시간10분벽을 깬 주인공이다. 처음 출전한 1987년 동아마라톤에서 4위를 했던 김 감독은 1991년 황영조(47)를 제치고 우승한데 이어 1992년 2시간9분30초의 당시 국내 코스 최고기록으로 동아마라톤 2연패를 달성했다. 한국 마라톤 사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높은 순위(4위·1993년 슈투트가르트)를 기록한 선수도 그였다.
김 감독은 최근 둘째 아들 영훈 군(16)을 일본 나가사키 친제(鎭西)고에 입학시켰다. 지난달 열린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8분22초의 기록으로 일본 1위(전체 8위)를 차지한 이노우에 히로토(24)를 배출한 학교다.
애초 김 감독은 자식들에게 운동, 특히 육상을 시킬 생각이 없었다.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은 달리기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야구, 농구, 럭비부가 있는 중학교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했는데 1학년 때 교내 단축마라톤에서 운동부 선수들과 함께 뛰어 3위를 했어요. 그래도 운동은 안 시키려 했는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뛰는 걸 보더니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주위에서 ‘자식이 소질 있는데 당신 같은 사람마저 육상을 안 시키면 어떡하느냐’는 말을 듣던 터라 마음을 바꿔 체육중학교로 전학을 시켰습니다.”
영훈 군의 현재 롤 모델은 ‘공무원 마라토너’로 유명한 일본의 가와우치 유키(30)다. 그는 엘리트 선수가 아닌데도 2시간8분14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 영훈 군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육상을 접하면서 마라토너의 꿈을 가지게 됐다. 아버지 말씀대로 공부도, 운동도 잘 하고 싶다. 달리는 게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풀코스를 뛰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스피드와 기본기를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유다. 김 감독은 “눈앞의 성적 때문에 몸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그렇다고 한 얘기를 또 하자니 잔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아예 영훈이를 ‘실험모델’로 삼는 것이다(웃음). 아들이 마라토너로 성공하면 내 주장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영훈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풀코스를 뛰게 되면 그 첫 무대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대회가 될 겁니다. 언젠가 ‘국내 첫 동아마라톤 부자(父子) 우승’이 이뤄지는 꿈, 생각만 해도 뿌듯합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