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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몸싸움 ‘난장판’ 헌재 앞… 직원들 “피하는게 상책”

입력 | 2017-02-10 03:00:00

탄핵심판 결정 앞두고 갈등 심화




탄핵 찬반 두 모습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 간부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기각을 촉구하며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큰절을 하고 있다. 그 오른쪽에서는 한 여성이 헌재가 탄핵심판 인용 결정을 빨리 내리라고 주장하는 팻말을 세워놓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다 죽여야 된다” “노인네들 세뇌당했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이런 자극적인 단어가 쉼 없이 터져나왔다. 중간중간 이보다 더한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탄핵 찬반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위 경쟁을 벌이다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였다. 헌재 앞을 지나던 외국인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며 스마트폰으로 촬영까지 했다. 그러다 몸싸움이 벌어지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헌재 주변 식당들도 곤혹스럽다.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 씨(56)는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며 “자기주장만 고래고래 떠드는 걸 보니 양쪽 다 똑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 하루 종일 막말 소음에 몸살

헌재 정문에서 약 3m 앞. 1m 길이의 태극기를 등에 완전히 걸친 70대 남성이 헌재를 향해 탄핵안 기각을 부탁한다며 차가운 맨땅에 큰절을 하고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30대 여성이 탄핵을 촉구하는 팻말을 든 채 서 있다. 귓불이 얼얼할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양측 집회 참가자들은 아랑곳 않고 돌아가며 하루 종일 맞섰다.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곳곳에 의경들이 배치됐다. 이들의 표정도 날씨만큼이나 긴장돼 있었다.

헌재 앞 분위기는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이날 오전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기자회견을 진행하자 탄핵 반대 1인 시위를 하던 김모 씨(71·여)가 “빨갱이 말을 듣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다. 남정수 퇴진행동 공동대변인은 이를 의식한 듯 “사회의 악성 종양, 범죄 비호 세력인 관제데모세력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30여 명의 집회 참가자가 모이니 충돌을 막는 일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후 정확히 두 달 동안 헌재가 몸살을 앓고 있다. 평일에는 매일 20여 명이 태극기를 들거나 노란 배지를 달고 1인 시위를 한다. 양측의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토요일의 헌재 앞은 더욱 북적인다. 사람이 많다 보니 “간첩×” “처분해야 할 쓰레기” 등 오가는 막말도 더욱 거칠어진다.

일부 집회시위자들은 단순히 구호만 외치는 것을 넘어서 ‘우’ 하는 야유를 보내거나 “공정하게 하세요”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매일 출퇴근을 하며 양극단의 집회시위를 목격해야 하는 헌법재판관과 직원들은 난감하기만 하다. 한 재판연구관은 “어떤 결정을 해도 사회는 분열될 것이고 국가는 난장판이 될 것”이라며 “최소한 헌재 주변에서는 집회나 시위, 그리고 정치인의 기자회견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를 흔들면 한국 사회의 마지막 판단 기구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재판연구관은 “정문 앞을 지나칠 때 시위자들을 보면 부담스러워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고 했다.

주변 상인들도 피해를 입고 있다. 헌재 인근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지난해 말부터 집회시위로 매출이 10% 정도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옆 가게 주인도 “소음에 쓰레기에 여러 가지로 피곤하다”면서 “관광객들이 많은 동네인데 오려고 하겠냐”며 고개를 저었다. 토요일인 11일에도 퇴진행동 측은 촛불집회 후 헌재 바로 옆인 안국역 1번 출구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 “공방과 압박으로 헌재 흔들면 안 돼”

여야의 공방도 한층 가열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9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탄핵 찬성 여론이 여전히 78%에 이른다”며 “헌재의 탄핵심판 조기 인용과 특검 기간 연장을 촉구하기 위해 촛불집회에 한 분도 빠짐 없이 참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 3당의 탄핵 촉구와 관련해 “헌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현저히 해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며 “압박을 넘어 협박과 공갈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헌재 앞 시위와 정치권의 과도한 공방이 헌재의 공정성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기 의견을 표시하는 건 국민의 기본권이지만 헌법재판관들을 압박해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생각은 민주주의도 법치도 아니다”라며 “누구의 목소리가 큰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이 정의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지영 jjy2011@donga.com·배석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