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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진현]역사의 정의와 촛불의 승화

입력 | 2017-02-02 03:00:00

트럼프-푸틴은 反자유주의, 중국이 자유무역 외치고 일본은 극우화로 大반역의 물결
中日러 앞서본 한국의 경험… 자유주의 토대 있어 가능했다
다시 지구촌 개벽의 시대, 한국은 극우·극좌로 갈 것인가… 正義의 역사로 나아갈 것인가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1993년 ‘20세기의 종언과 근대의 종언’을 쓴 미국 역사학자 존 루카치는 21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러시아인이 백인’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가 1898년 죽기 전에 남긴 말 “다음 세기에 가장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영어를 한다’는 것”을 빌려 미래를 전망한 것이다. 미국이 영국과 동맹으로 독일을 물리치고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을 비스마르크가 예견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요사이 도널드 트럼프의 기괴한 언행, 특히 친러시아 친푸틴 성향은 루카치의 예언과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20세기 끝을 한 세기의 끝이 아니고 500년 대서양 지배문명의 끝으로 해석한 그는 옛 소련 해체에도 불구하고 비(非)서양 세력의 등장에 대항하는 넓은 백인연합, 미-러 동맹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트럼프와 푸틴은 중국 견제에서 일치하고 국가주의 보호무역 등 반자유주의 성향도 일치한다.

 이 와중에 엉뚱한 아이러니가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다. 태초부터 패권 제국이며 제도적으로도 전체주의 일당독재인 중국의 ‘핵심’ 군주 시진핑이 미국을 대신하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기수라고 공언하고 있다. 중국은 시장경제적 개념의 기업이 없는 나라다. 모든 기업, 특히 국영기업에는 공산당위원회와 당서기가 있고 이들이 경영을 맡는다. 국영 넘어 당치(黨治) 경제인 것이다. 또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미중러 사이를 비집으며 극우화로 치닫고 있다. 진보진영의 아이콘인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까지 일왕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요구하는 극우 주동 성명서에 서명하는 지경으로 전락했다.

 1989년에서 2001년까지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 이후 9·11테러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으로 이어진 근대의 대반역은 막을 수 없는 역사 전개처럼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기록으로 보면 70억 인류의 빈곤이 현저히 개선되는, 역사상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과 무역이 향상되어 하나의 지구촌으로 평등화의 길을 걷고 있다. 휴머니즘과 환경 공생의 보편적 이상과 범지구적 나눔의 제도화도 진전하고 있다. 역사의 동력을 물리적 작용과 반작용으로 보느냐, 인간사회 진보의 이상으로 보느냐에 따라 미래 선택이 갈린다.

 1990년 소련과의 수교와 경제 원조, 1992년 중국과의 수교와 경제기술 원조 제공, 인구가 3배나 많은 일본보다 자연과학 대학생 수가 30%나 많은 경험 등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중일러를 눌러본 경험에, 후진국 중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후진국에 공적원조를 주는 최초이자 유일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보편적 자유주의 토대에서 가능했다. 그 대한민국은 새로운 개벽이 오는 시대에 어떤 이념적 제도적 패러다임을 모색하는가. 대국들의 극우·극좌에 공통된 대반역의 물결에 올라탈 것인가, 아니면 21세기 자유주의 실험에 성공해 지구촌 새 질서 창조의 주역으로 나설 것인가.

 작년에 시작된 촛불(맞불)은 그 역사적 실험이다. 대한민국은 그런 실험이 가능한 독특한 토대가 있다. 불교 유교 전통국가이면서 제3세계 최대 기독교인구 비율을 가진 종교 간 공존의 다원성, 일본과 동유럽을 앞서는 시민사회, 민주정치와 자유주의 제도 등이다. 이를 바탕에 둔 촛불(맞불)은 지구촌 보편의 자유체제, 광장 정치질서의 창조로 승화되어야 한다. 반대로 적전 분열과 패거리 정치 먹잇감으로 전락하면 한국은 반역의 선풍 속에 빠져 죽는다.

 종교도 대학 지성도 패거리의 한편으로 전락하는 현실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깨어있는 지성이 자기편으로 여겨지는 반동과 반역을 거부하는 것이다. 지금 촛불에 축시를 쓰는 고명한 시인은 내게 말했다. “북한 쪽 판문점에서 남쪽 태극기를 바라보니 대한민국이 정말 고마웠다. 이렇게 북을 방문할 수 있고 마음대로 소주 마실 수 있고 쓰고 싶은 시 쓰고 정말 고맙다 대한민국.” 내가 “그 얘기를 좀 쓰라” 하니 “아냐, 아직은 아냐”라고 했다. 벌써 5, 6년 전 이야기다. 언제쯤이나 쓸 수 있을지. 팔순을 넘겨 토요일마다 열심히 태극기 들고 나가는 옛 동료들도 있다. 종북 극좌의 목표인 대한민국 전복을 막으려는 충정도 박정희 박근혜 일방 찬양으로 둔갑하면 맞불은 꺼지고 태극기는 불타고 만다.

 딸깍발이 사학자요 선비였던 고 김준엽 선생은 ‘역사의 신’에서 ‘역사의 신을 믿으라. 정의의 선과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썼다. 진실에 대한 외경, 생명 존중, 자유와 평화에 대한 열정 그리고 역사에 정의가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만 촛불(맞불)은 새 역사로 승화된다.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