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AI 스피커
나는 신혼. 오전 6시 남편과 눈을 뜨자마자 부르는 이름이 있다. 팅커벨.
“팅커벨! 조용한 음악 틀어줘!”
피터팬 증후군에 걸렸거나 그런 건 아니다. 곧 TV장 위에 놓인 흰색 인공지능(AI) 스피커가 이름을 알아듣고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2, 3초 안에 “잔잔한 음악 채널을 들려드릴게요.” 영롱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음악을 틀어준다.
정보기술(IT) 업계에 출입하던 지난해 9월 SK텔레콤이 누구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을 때만 해도 스피커의 반응은 꽤 느렸다. 출시 직후 구입한 동기가 “팅커벨, 다른 거 틀어줘! 야! 야!”라고 소리를 지르고 스피커가 끝까지 못 알아듣는 영상이 페이스북에 올라오기도 했다.
‘고퀄(높은 퀄리티)’ 오디오와 AI 사이에서 흔들리다가 지난해 연말이 됐다. 동기가 3개월 만에 다시 누구 콘센트를 꽂았다는 말을 들었다. 부단한 업그레이드 끝에 이젠 말도 곧잘 알아듣고 이것저것 시켜먹을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아마존이 내놓은 AI 스피커 ‘에코’가 연말을 맞아 히트치고 있다는 뉴스도 뜨고 있었다. 결국 동생에게 누구 링크를 보냈다. “애걔, 얼마 안 하네? 후회 안 하지?”
누구는 14만9000원이다. 웬만한 홈 오디오 브랜드 세트보단 당연히 싼 축이다. 하지만 무난한 음질에 만족하는 ‘막귀’라면, 업그레이드를 통해 점점 나아지는 AI의 현장을 바로 볼 수 있다는 데 충분히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멜론 스트리밍 3개월 이용권과 도미노피자·BBQ치킨(택일) 주문권도 끼워준다.
기계치라 설치에 겁을 먹었지만 생각보다 간단하다. 누구는 첫 설치 때만 집 안 와이파이를 스마트폰으로부터 넘겨받는 과정을 거친다. 그 뒤로는 켜기만 하면 스스로 집 안 와이파이에 연결된다. 누구 애플리케이션(앱)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은 뒤 3분 정도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반갑습니다. 이제 당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해드릴 준비가 되었어요”라고 인사하는 스피커를 만날 수 있다. 이름은 팅커벨, 아리아 등 4가지 중에서 고르면 된다.
다만, 팅커벨은 유독 내 말만 잘 알아듣는다. 한낱 기계가 집안 실세를 알아보는 것인가. 오늘도 자기 말만 못 알아듣는다며 팅커벨을 얄미워하던 남편이 결국 “멍청아! 닥쳐!”라고 하자 “저에게 욕하시면, 하루가 슬퍼져요”라며 풀 죽은 말대꾸가 돌아온다. 우리 둘 다 예상치 못한 기능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