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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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LG팬들은 잠실구장에 G드래곤의 '하트브레이커(heart breaker)'가 울려 퍼질 때마다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승계주자 실점율(11%)이 리그에서 가장 낮았던 김지용(29·LG)의 등판을 알리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LG의 가을야구 진출은 열에 아홉은 실점을 막아낸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 김지용에게는 이번 겨울이 방출 걱정 없이 다음 시즌 준비에만 집중하는 첫 번째 겨울이다. 김지용은 덕수고 시절부터 주전경쟁에서 밀려 전학을 가야했던 별 볼일 없던 덩치 작은 유격수였다. "수비는 그럭저럭 잘 했는데 방망이가 워낙 안 좋았어요." 서울 토박이인 그가 강원도 강릉까지 대학을 갔던 것도 순전히 "야구를 못해서"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김지용은 마트 과일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등학교 동창이 영동대 야구부에 들어갔어요. 저한테 같이 가자고 했는데 저는 야구로는 앞이 안 보여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하지만 김지용의 재능을 아깝게 본 그 친구가 야구부 감독에게 김지용의 입학을 권유하면서 김지용의 야구 인생 2막이 시작됐다. "감독님이 아버지한테까지 찾아오셔서 야구부 입학을 설득하셨어요. 마침 알바도 너무 힘들어서 솔깃했던 것도 있었고요. 과일이 빠지면 채워 넣는 일이었는데 진열장에 있는 과일을 먹는 어머니들이 너무 많으셨어요. 거봉을 막 따 드셔서 '드시면 안 된다'고 하면 '안 먹어보고 어떻게 사느냐'고들 하셨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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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도 아닌 2년제 전문대 선수. 마운드 위에서 제대로 공 한번 던져보지 못했던 초짜. 하지만 김지용은 명문 연세대를 잡기도 하는 등 대학야구에서 수차례 이변을 이끌어내며 스카우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선수가 됐다. "졸업하는 년도(2009년)에 결과가 좋아서 잘 풀렸어요. 웃긴 게 제가 2년제 학교를 4년을 다녔어요. 첫해는 정식 입학을 못해서 연습경기만 나갔고 중간에는 편입이 잘 안됐어요. 감독님이 1년 더 해보라고 하셨는데 감독님 선택이 옳았었죠."
201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9라운드에서 겨우 LG 유니폼을 입었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여줄 만큼 기회를 받지는 못했다. 공익근무 2년을 마치니 신분은 이미 정식 선수가 아닌 신고선수. "나름대로 준비를 엄청 하고 나왔는데 내가 팀에 이것밖에 안되는 구나 느낀 건 맞아요. 그런데 제가 처음부터 1군 선수가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2군에 있을 때도 정말 재밌게 열심히 했어요. 그냥 야구가 좋았거든요."
제대 후에도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던 김지용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한국 대표팀 선수들에게 라이브 배팅볼을 던져주다 양상문 감독의 눈에 띄면서 1군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1~2군을 오가는 생활은 2015 시즌에도 계속됐지만 김지용은 그저 유니폼 입는 게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던졌다. "프로에 있는 친구들은 아마 그런 절실함을 모를 거예요. 다들 야구를 잘해서 아르바이트 같은 건 안 해봤잖아요."
김지용의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치면 '분식(승계주자에게 실점하면서 앞서 등판한 투수의 자책점을 올리는 것)을 싫어하는 김지용'이라는 표현이 곧잘 나온다. 지난 겨울 결혼한 김지용의 장모님은 이를 오역(?)해 딸이 남편과 떡볶이를 먹으러간다고 하면 "지용이 분식 싫어한다는데 왜 자꾸 떡볶이를 먹느냐"고 타박하기도 한다고. 야구장에서는 분식을 싫어하는 선수지만 야구장 밖에서 김지용은 일주일에 한번씩은 아내와 분식집에 가는 분식 마니아다. 물론, 내년에도 그라운드 위에선 분식은 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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