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리베로 여오현과 초등생 배구 세터 아들
“머리스타일 똑같죠?”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 여오현 플레잉코치(왼쪽)가 아들 광우와 함께 충남 천안시에 있는 숙소 겸 연습장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광우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배구를 시작하면서 엄마에게 “아빠하고 머리를 똑같이 해달라”고 졸라 결국 똑같은 헤어스타일이 됐다. 광우는 “그 뒤로 아빠하고 정말 똑같이 생겼다는 말을 엄청 듣는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 제공
○ 웰컴 투 40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 여오현 플레잉코치(리베로)는 해가 바뀌면서 한국 나이로 불혹을 맞았다. 마흔 살은 배구 선수로는 환갑이 지난 나이. 현역 선수 중에서 여 코치보다 나이가 많은 건 한국전력 방신봉(42) 한 명뿐이다. 그래도 ‘이어준다’는 점에서 여 코치보다 확실히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대한민국에 없다.
여 코치가 이렇게 회춘한 건 ‘여오현 45세 현역 프로젝트’ 효과 덕이다. 여 코치는 오프시즌 동안 최태웅 감독 지시로 탄수화물을 줄인 특별 식단을 먹고 필라테스 등으로 유연성을 기르는 훈련에 집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은 여 코치와 신동광(28)이 번갈아 코트에 들어서는 ‘더블 리베로’ 시스템을 가동했다. 여 코치의 체력 부담을 줄여주려는 조치였다. 이번 시즌에는 거의 여 코치 혼자 수비 라인을 지키고 있다.
2일 현대캐피탈이 숙소 겸 연습장으로 쓰는 복합 베이스캠프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만난 여 코치는 “남들이 마흔이 됐다니까 마흔이 됐나 보다 할 뿐 차이를 모르겠다”며 웃은 뒤 “서른다섯이 됐을 때가 더 나이 먹었다는 실감이 났던 것 같다. 그때는 하루하루 몸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은퇴를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일방적으로 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길을 열면 리베로 후배들도 오래 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리베로는 순발력과 판단력이 생명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근육량은 많아지고 몸무게는 줄면서 순발력이 좋아졌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레 상황 판단에도 여유가 생긴 것 같다”면서 “배구에서는 수비 라인이 뒤에서 디그로 1점만 이어줘도 흐름이 바뀐다. 코트 위에서 하루라도 더 이어줄 수 있도록 몸 관리를 잘하겠다”고 말했다.
○ 부전자전
여오현 플레잉코치(왼쪽)가 아들 광우가 연습하는 걸 지켜보며 웃고 있다. 여 코치는 사진 촬영을 위해 의도된 연습인데도 “양쪽 무릎을 골고루 써야 나중에 안 아프다”, “다이빙은 배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며 꼼꼼하게 아들을 챙겼다. 현대캐피탈 제공
롤 모델 또 한 명은 아빠하고 같은 팀에서 뛰는 세터 노재욱(25)이다. 그래서 등번호도 노재욱의 3번을 선택했다. 광우는 인터뷰 도중 노재욱이 지나가자 엉덩이를 들썩이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광우에게 ‘아버지 등번호인 5번을 선택할 생각은 없었냐’고 묻자 “솔직히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원래는 재욱이 삼촌을 잘 몰랐는데 (재작년) 현대캐피탈로 오면서부터 좋아졌다. 재욱이 삼촌은 공을 시원시원하게 연결하는 게 너무 멋지다”고 말했다.
이제는 노재욱 팬이 됐어도 광우가 배구를 하고 싶게 만든 건 역시 아빠였다. 광우는 ‘아빠에 대해 제일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잘 놀아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버지가 무얼 하고 놀아 줬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배구”라는 답이 돌아왔다. 숙소 생활로 집에 자주 가지 못하던 여 코치는 집에 갈 때마다 아들하고 풍선으로 배구를 하고 놀았다.
여 코치는 “처음에는 배구하는 걸 반대했다. 그 대신 야구나 축구를 해보라고 했는데 무조건 싫다고 하더라. 내 키(175cm)를 보나 광우의 지금 키(145cm)를 보나 별로 키가 클 것 같지 않다고 하니까 ‘그럼 세터 하겠다’고 하더라”며 “사실 나도 학창 시절 키 때문에 종목을 바꾸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결국 배구를 못 버렸다. 애 엄마도 학창 시절 배구를 했다. 그래서인지 광우가 배구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고 좋아해야 열심히 할 것 같아 결국 허락했다”고 말했다.
여 코치에게 “45세 프로젝트를 1년만 더 연장하면 아들하고 같이 코트에 설 수도 있다”고 하자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영 싫지는 않은 듯 네트 아래서 놀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눈가엔 웃음이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