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뭄/애너벨 크랩 지음/황금진 옮김·정희진 해제/432쪽·1만7500원/동양북스
남성 연예인의 주부 생활을 그린 KBS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 ‘아내가뭄’의 저자는 남성들의 서툰 살림 솜씨는 유머의 소재가 되지만 여성이 부엌일을 못하면 싸늘한 눈으로 바라본다고 지적한다. 동아일보D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4년 여성은 하루 평균 4시간 33분 가사노동을 하는 데 비해 남성은 2시간 21분으로 절반에 그친다. 한국은 격차가 더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이 집안일을 한 시간은 3시간 14분이었지만 남성은 5분의 1인 40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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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이를 어렵게 하는 사회구조를 촘촘히 짚어내고 자신의 경험과 각종 사례를 발랄한 문체로 맛깔스럽게 버무려내 설득력을 높인 것이 이 책의 강점이다.
세 자녀의 엄마인 저자는 캥거루 봉제인형과 함께한 활동을 사진 찍어 스크랩하는 아이의 과제를 깜빡 잊고 챙기지 못했을 때 ‘인간으로서 실패한 것 같았다’고 토로한다. 커피숍에 가려 해도 분유, 기저귀, 손수건 등 온갖 물건을 ‘우주탐사’하듯 챙겨야 하고, 집에서 일하더라도 집요하게 저자의 콧구멍에 시리얼을 집어넣는 아이를 상대해야 한다.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는 오전 7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도 오전 1시까지 식사를 미리 준비해 놓고 가야 뭔가 속죄하는 기분이 든단다.
남성이 집안일을 하려면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원하는 시간에 근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근무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기보다는 현재 있는 직원에게 더 많은 업무를 안긴다. 노동운동 역시 정규직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꼬집는다.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원하는 시간에 일하는 탄력 근무를 지원하는 남성은 승진할 생각이 없는 인물로 간주된다.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오기 위해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하는 남성은 퇴근할 때마다 동료에게서 “일찍 가서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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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빠에게도 아이가 태어나서 걷기 시작하고 말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권리가 있다는 대목은 가슴을 울린다. 최고경영자부터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실현될 날이 올지는 미지수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아내가 되어주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원제는 ‘The Wife Drought’.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