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2/리처드 도킨스 지음·김명남 옮김/396쪽, 616쪽·1만9500원, 2만4500원·김영사
동료와 함께 마이크와 오르간으로 귀뚜라미 행동 실험을 하는 리처드 도킨스(오른쪽). 도킨스는 옥스퍼드대에서 스승들이 질문을 던지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 보고서를 쓰는 방식으로 개인 지도를 받으며 지적으로 크게 성장했다고 말한다. 김영사 제공
리처드 도킨스다. 맞다. 생명체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이기적 유전자’,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만들어진 신’, 창조론을 신랄하게 반박한 ‘눈 먼 시계공’을 쓴 그 과학자 말이다.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도발적인 주장을 거침없이 펼쳐 세계를 지적 충격에 빠뜨린 그이기에 까칠하고 예민할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한데 첫 회고록에서 의외의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숭배해 그의 음악 ‘나는 믿습니다’를 들으며 엘비스가 자신에게 신의 존재를 알렸다고 믿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함을 느끼는 보통 소년이었다. 하지만 다윈의 ‘눈부신’ 이론에 강렬하게 끌리면서 16세부터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돼 학교 예배당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의 기질이 본격적으로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역작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는 적잖다. ‘이기적 유전자’는 옥스퍼드대에서 강의하던 당시 파업으로 전력 사용이 제한되는 바람에 탄생할 수 있었다. 전기를 이용한 연구를 할 수 없어 이동식 타자기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 전기가 다시 들어오면서 첫 장만 쓴 채 글쓰기는 중단됐다. 서랍 속에서 잠자던 원고는 1975년 안식년을 맞으면서 집필에 속도가 붙었다. 그는 농담처럼 “내 베스트셀러”라고 말하며 썼는데, 35세였던 1976년 책이 출간되자 이는 현실이 됐다!
1권은 개인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 수월하게 읽힌다. 2권은 학자로서 그가 걸어온 길을 세밀하게 정리했다. 그의 업적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2권에 눈길이 더 갈 것 같다. 학문적 라이벌이었던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의 견해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한 걸 보며 학자로서 여전히 뜨거운 피를 가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세 번 결혼한 그이지만 연애사를 상세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스물두 살 때 여성 첼리스트와 가진 첫 경험에서 원시적 충만감을 느꼈다고 고백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두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줄리엣이 암으로 고통받다 떠난 엄마를 지켜보던 모습을 떠올리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물이 날 것 같단다. 세계적인 과학자도 자식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다.
그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은 만만치 않지만 세계적인 과학자들과의 교류와 연구의 세계를 엿보는 건 지적으로 많은 자극을 준다. 원제는 ‘An Appetite For Wonder’(1권), ‘Brief Candle In The Dark’(2권).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