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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시장 원리의 엄중함을 상기하자

입력 | 2016-11-04 03:00:00

독일 나치정권의 통제경제… 반짝 효과 뒤 살인적 물가 폭등
화폐개혁 이은 시장경쟁 도입이 생산 급증과 소득 향상으로 이어져
‘라인 강의 기적’ 토대 마련… 시장경제로만 생활수준 향상 가능
무분별한 개입과 규제 제거해야




조장옥 객원논설위원 한국경제학회 회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1936년부터 나치 정권은 독일의 자본주의 경제를 통제경제 체제로 바꾸었다. 나치 정권 경제정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가격과 임금은 1936년 가을 수준으로 동결한다. ②소비재와 식량은 배급제를 따른다. ③노동, 원자재 및 주요 상품은 중앙에서 배분한다. ④농부들은 주어진 식량 쿼터를 의무적으로 공납한다. ⑤주택에 관하여는 엄격한 규제를 실시한다. 이와 같은 나치의 통제정책은 전시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온갖 문제를 초래했다.

 종전 이후의 혼란 속에서 독일 국민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식량과 연료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전시에 통화를 찍어 썼기 때문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다. 당시 독일의 공식 화폐인 라이히스마르크(Reichsmark)는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당연히 암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암시장에서 교환의 매개수단은 담배였다. 그나마 암시장 거래는 큰 역할을 못 하였고 대부분의 재화는 시장에 나오지 않고 퇴장되었다. 가격이 통제되고 있는 시장에서 가치가 없는 공식 화폐를 받고 재화를 공급할 공급자는 당연히 없었던 것이다.

 전후 독일 국민의 어려움은 전쟁 기간보다 더하였다.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쾰른의 대주교였던 요제프 프링스 추기경은 1946년 12월 31일 저녁 제야 미사 강론 중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면 식량과 석탄을 훔쳐도 좋다고 말할 정도였다. 물론 가능한 한 빨리 되갚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전후 독일의 시장개혁은 1948년 6월 20일에 단행된 화폐개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단행된 화폐개혁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첫째, 라이히스마르크를 도이체마르크(Deutsche Mark·DM)로 대체하고 화폐 공급을 크게 감소시킨다. 이를 위해 모든 국민에게 40DM을 공급하고 두 달 뒤에는 20DM을 공급한다. 기업에는 노동자 1인당 60DM을 지급한다. 이 외의 모든 개인 소유의 라이히스마르크와 은행 예금에는 10 대 1의 교환비율을 적용한다. 둘째, 사적 및 공적 부채를 구조조정한다. 임금이나 집세, 연금 소득은 라이히스마르크와 도이체마르크의 교환 비율을 1 대 1로 유지하되 그 외의 모든 부채는 교환 비율을 10 대 1로 한다. 셋째, 새 통화인 도이체마르크를 보호하기 위하여 중앙은행을 설치하여 독립적으로 통화를 발행할 권한을 주고 정부의 과도한 재정적자를 금한다.

 화폐개혁을 단행한 직후 서독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던 기독교민주당(CDU)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재빠르게 계획경제 체제를 폐지하고 시장경쟁 체제를 재도입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대부분의 공산품과 일부 식량의 가격 통제를 해제하고 재화의 배급제를 폐지하였다. 자원의 배분도 시장에 맡겼다. 이러한 개혁을 통해 서독에서는 1948년 후반부터 가격 통제가 사라지고 경쟁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가 열렸다.

 개혁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하루아침에 물물교환이 화폐경제로 바뀌었다. 재화와 노동의 대가로 새 화폐인 도이체마르크가 사용되고 상점에는 전에 없던 재화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암시장은 거의 사라졌다. 모든 사람에게 40DM을 지급하였기 때문에 기아에 시달리며 창백한 얼굴로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생산도 급격히 증가하였다. 특히 가격 통제가 사라진 제조업의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1948년 서독의 1인당 소득증가율은 16%까지 치솟는다. ‘라인 강의 기적’이 시작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시장개혁의 효과는 경제성장과 생활수준의 향상을 위해 경쟁과 그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는 준엄하다는 사실이다. 일반 시장 참가자나 기업가, 정치인, 관료 모두 경제 원리의 준엄함을 인식하고 시장경제의 원리에 충실할 때 가장 높은 생활수준이 달성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도입된 시장 개입과 규제가 산재해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저성장시대로 진입하였고 지금의 반시장적 제도와 정서로는 성장률이 더 하락할 수밖에 없다. 0.1% 높은 성장도 아쉬운 지금 무분별한 시장 개입과 규제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되돌아볼 때인 것이다.
 
조장옥 객원논설위원 한국경제학회 회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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