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정치부 차장
병자호란을 다룬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는 청나라의 군사가 이미 국경을 넘어 몰려오고 있는데도 설전만 벌이던 조선 조정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책에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대피한 뒤에도 끝없이 이어진 주화파(主和派)와 주전파(主戰派)의 설전, 그 와중에 민초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이 담겨 있다. 결국 이 전쟁은 인조가 직접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삼전도의 굴욕’으로 끝났다. 완전한 패배였다.
북한의 5차 핵실험 뒤에도 대북 정책 방향을 놓고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이제 북한의 핵무기 실전 배치가 머지않았고, 핵무기 개발이 끝나면 우리가 북한에 대해 내놓을 카드가 더 줄어든다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갈지 여전히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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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에 관한 한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는 북한의 독재 체제에 비해 취약한 측면이 많다. 북한은 광복 이후 김씨 일가가 줄곧 통치하면서 일관된 대남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5년마다 대통령이 선출되고 대북 정책의 기조가 180도 바뀌기도 한다. 내부에서 수많은 설전이 벌어지면서 대북 정책이 힘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김정은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2011년 27세의 김정은이 권력을 잡았을 때 일부 전문가는 급변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숙청과 핵개발을 통해 권력 기반을 공고히 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의 행동 방식을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평가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본인 스스로는 이를 합리적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취지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김정은 정권은 박근혜 정부의 임기 후반이자 미국의 권력 교체기를 맞아 다양한 전략을 궁리하고 있을 것이다. 도발의 강도를 높이면서 한편으로는 대화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그때마다 한국의 정치권과 민심은 술렁이고 말이 난무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적어도 대북 문제에서만은 이견은 적게 말하고, 공통분모는 최대화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박 대통령이 과거 정권의 일로 야당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고, 이런 엄중한 시점에 대북 쌀 지원을 주장할 일은 더욱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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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