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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롤 모델로 삼아 또 한번의 도약 꿈꾸는 태국

입력 | 2016-10-03 20:23:00


태국 램차방 항구


"미국 일본 등 세계적인 제조기업들과 부품업체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진출을 환영합니다."(태국 정부 당국자)

지난달 26일 태국 방콕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남동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니 동부 해안이 펼쳐졌다. 태국 정부가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동부 경제회랑(EEC·Eastern Economic Corridor)'이 본격 시작된 것이다. ECC는 방콕-촌부리 주-최대 수출항 램차방-라용 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200㎞를 따라 설정된 지대다. EEC 내 29개 산업단지에서 생산된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등의 제품들은 인구 6억 명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시장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등으로 수출된다. 산업단지를 담당하는 정부 당국자는 "EEC에 첨단 업종 공장들을 집중 유치하려고 한다"며 "EEC를 아세안에서 가장 현대화된 특별경제구역(SEZ·Special Economic Zone)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헤마라즈 산업단지의 포드자동차 공장


잠시 뒤 EEC에 속한 라용 주의 헤마라즈 동부해안 산업단지에 도착했다. 잘 닦여진 도로 옆으로 포드 스즈키 브리지스톤 같은 대기업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한 공단 직원은 "한국 기업들도 일부 있는데 앞으로 더 들어와야 한다"며 "한국 기업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인근 공단의 한 구역을 최근 '코리아존'으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아세안 진출의 거점국가로 평가받는 태국이 개발도상국 경제발전의 모범 사례인 한국을 롤 모델로 삼아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비교적 순조롭게 고도 경제성장의 길을 걸어왔던 태국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친(親)탁신 세력과 반(反)탁신 세력의 충돌로 2013년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이듬해 군부 쿠데타에 이어 프라윳 찬오차 총리가 이끄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치안은 어느 정도 안정됐지만 경제는 아직 불안정한 편이다. 2012년 7.2%였던 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세계은행 기준)은 2013년 2.7%에 이어 2014년 0.8%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2.8%(추정)로 다소 개선됐지만 아세안 지역의 경제성장률 4.5%에 비하면 낮다.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도 지난해 30억 달러로 전년 대비 90% 급감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2%나 줄었다.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올 3월 쏨킷 짜뚜씨피탁 태국 경제부총리가 5개 경제부처 장관 등 대규모 투자 유치 사절단을 이끌고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이런 위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국은 한국의 강점인 디지털경제를 적극 받아들여 첨단산업 중심의 경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태국 고속철사업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태국 정부는 한국수자원공사가 2013년 6조 원대의 물관리 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이듬해 쿠데타로 사업이 백지화된 것과 관련해서도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까지 나서 협조를 요청하자 올 8월 국토교통부와 태국 농업협동부가 '후웨이루앙강 하류 유역 물관리 사업' 협력의향서(MOI)를 체결한 것이다. 2021년까지 추진되는 1단계 사업은 2800억 원 규모다.

쑤윗 메씬씨 태국 상무부 부장관


태국은 요즘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다. 개발도상국이 경제 발전 초기 순조롭게 성장하다 중진국 수준에 이르러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는 현상을 뜻한다. 1인당 국민소득 6000달러 문턱(지난해 5816달러)을 뛰어 넘어 1만 달러, 2만 달러 시대로 달려가기 위해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고 싶어 한다. 방콕을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 강변의 청사에서 만난 쑤윗 메씬씨 태국 상무부 부장관은 "현 정부는 태국을 변화시켜 오랜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려 한다"며 "한국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디지털인데, 한국의 디지털 경제가 태국이 추구하는 변화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콕·라용=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