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최영훈의 법과 사람]허드슨 강의 기적과 세월호 참사

입력 | 2016-10-01 03:00:00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뭉클한 여운이 남는 영화를 오랜만에 봤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불이 켜졌는데도 자리를 한참 못 떠났다. 톰 행크스의 연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이 화면을 압도했다.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은 2009년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US에어웨이스 1549편의 추락 사고를 다룬다.

155명 전원 구조의 기적

 그해 1월 15일,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운 여객기가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 2분 만에 버드 스트라이크로 양쪽 엔진이 모두 꺼진다. 기장 체슬리 설렌버거(애칭 설리)는 즉각 뉴욕관제탑 관제사와 교신해 도움을 청한다.

 라과디아 공항 활주로로 회항을 권유받았으나 불가능했다. 그러자 관제사가 티터버러 공항을 권하며 비상착륙 준비를 시킨 뒤 비상구조 요청을 당국에 전파했다. 그러나 설리는 비행기 고도·속도를 고려할 때 실패 시 대형 인명 피해를 부를 수 있다고 판단한다. 42년 차 베테랑인 설리는 비행 경험만 1만9500시간에 물 위 착륙법도 배운 바 있다. 하지만 성공 사례는 전무했다.

 설리는 “불가능하다(We can't do it)”며 “허드슨 강에 착륙한다(We're gonna be in the Hudson)”라고 말한다. 순간 귀를 의심한 관제사는 “미안, 뭐라고?(I'm sorry. Say that again?)”라고 되묻는다. 그야말로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교신을 마친 지 1분 30초 만에 여객기는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다. 하강하면서 설리는 “기장이다. 충격에 대비하라(This is the captain. Brace for impact)”라고 거듭 방송한다. 승무원들도 “고개를 숙이고, 좌석 아래로!(Heads down, Stay down!)”를 반복해 외치며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설리는 베테랑답게 하강 속도와 평형을 맞춰 동체의 손상 없이 물 위 착륙에 성공했다. 여자와 아이들부터 비상탈출 미끄럼대로 보낸 뒤 나머지는 동체의 날개 위로 보냈다. 1월이라 영하 6도의 강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페리보트가 달려와 날개 위의 승객들부터 구했다. 155명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차가운 강물이 들어찬 비행기 안을 몇 차례 확인하고 설리는 최후로 탈출한다.

 세월호 침몰 때 우리 모두는 1시간 넘게 손놓고 바라만 보았다. 탑승객 304명이 숨지고 실종된 참사를 겪고도 우리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침몰 한 시간여 전,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 최초의 전화가 걸려 왔다. 수학여행 떠난 단원고 학생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허드슨 강과는 달리 당국은 사고에서 구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무책임하고도 허술했다.

 도망간 세월호 선장과 달리 설리 기장은 뛰어난 판단력과 직무능력 및 경험, 책임감으로 승객 구조에 몸을 던진 진정한 프로였다. 항공·해상구조대, 페리보트 승무원 등 구조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최선을 다했다. 그게 선진국 미국의 실체다. 설리는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언론들에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러다간 중진국 신세 못 면해

 위기 상황에서 리더의 능력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영화는 웅변한다. 리더십도 시스템도 못 갖춘 우리는 선진국 문턱에서 멈춰 선 채 오랫동안 중진국에 머물 것 같다. 부디 나라를 엉망으로 이끌고 있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가 진흙탕 싸움일랑 멈추고 주말에는 이 영화를 꼭 봐 주시길 부탁한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