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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서 치고 던지고 달리고… 장애인에게 야구교실은 소풍”

입력 | 2016-07-28 03:00:00

야구봉사 나선 이경필 前두산 투수




경기 포천시의 한 야구연습장에서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경필 씨(왼쪽)와 박철순 씨(가운데)가 장애 아동과 함께 야구 연습을 하는 도중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포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000년 전후로 야구를 좀 봤다는 OB·두산 팬들은 ‘이경필’이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 야구에 빠진 팬들이라면 예능 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 코치로 떠올릴 수 있다. 그랬던 이경필 씨(42)가 요즘 지적장애인들과 함께 새로운 야구 인생을 즐기고 있다.

최근 경기 포천시의 한 야구연습장에서 만난 이 씨는 대리운전회사 대표, 충북대 강사, 야구 해설위원 명함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먼저 야구 코치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지적장애인들은 야구 때문에 상처받았던 제게 야구로 다시 보람을 느끼게 해 준 사람들입니다.”

고등학교 때 유망한 투수였던 이 씨는 1997년 배명고 선배이자 당시 OB 베어스 투수 박철순 씨의 눈에 들어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2000년 전후로 전성기를 보냈지만 부상으로 구위가 떨어지면서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구단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 씨는 “그때 워낙 충격을 크게 받아 야구는 쳐다보기도 싫었다”며 “다른 구단에 갈 수도 있었지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덜컥 은퇴를 해 버렸다”고 회상했다.

은퇴 후 이 씨는 골프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2010년 지인의 소개로 부인 김차경 씨(40)를 만나면서 야구공을 다시 만지게 된다. 정확히는 2012년 결혼 후 다운증후군이 있는 처형을 만나면서였다. 충남 공주시의 변두리에 살고 있는 처형은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장을 보러 나가기도 어려웠다. 이 씨가 한 번씩 찾아가 외식이라도 하자고 하면 처형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때 이 씨는 장애인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능력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야구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이 씨는 2014년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야구 교실을 열었다. 넓은 운동장에서 공을 던지고 달리는 장애인들에게 야구 교실은 소풍이었다. 가는 곳마다 “정기적으로 불러줄 수 없겠느냐”는 요청이 이어졌다.

혼자 힘으론 어렵겠다고 생각한 이 씨는 대선배 박철순 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21일 이 씨와 함께 야구장에서 만난 박 씨는 “눈여겨본 후배 녀석이 아쉽게 은퇴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며 “그런 후배가 야구에 다시 의욕을 가지고 좋은 일도 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연예인 야구단 활동을 하던 가수 김창렬 씨와 제갈성렬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도 뜻을 같이했다. 이들은 “야구만 할 게 아니라 방송국 견학도 시켜주고 스케이트 교실도 열면 되겠다”며 일을 크게 벌이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요즘 ‘해피 딜리버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장애인들이 원하는 곳으로 ‘소풍’을 데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 씨는 “장애인 봉사에 많은 사람을 참여시킬 것”이라며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 코너를 통해 시민들의 기부금도 모아 봉사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요즘 그의 목표는 승합차 한 대를 구입하는 것. 그는 “지금은 렌터카를 쓰고 있지만 앞으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차가 생기면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장애인들이 산이나 바다 등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씨의 최종 목표는 장애인 전용 체육관을 짓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마음껏 운동하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다시 야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일깨워준 것에 대해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