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논설위원
이기주의로 쪼개진 사회
기자인 나보다 더 공무원의 복지부동(伏地不動) 행태를 비판하던 A와는 딱 하나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다. 바로 연금 문제였다. 연금개혁이 이슈가 됐을 때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얼마나 특혜인지, 혈세로 연금 재정을 메워야 하는 일반인의 박탈감이 얼마나 큰지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설명해도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그 대신 ‘평생 박봉에 고생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공무원의 최후 보루’라는 판에 박힌 얘기를 되풀이하곤 했다. 누구보다 수치에 밝고 객관적인 그였음에도….
언제부터 한국사회가 이토록 직역(職域)이나 지역, 혈연 또는 계파 이기주의에 함몰돼 갈가리 찢어졌을까. ‘우리가 남이가’ 식의 이익공동체만 난무할 뿐 대한민국 전체를 ‘운명공동체’로 바라보는 시각은 실종된 지 오래다. ‘내 편’과 ‘네 편’으로 싸우며 내 편이 이길 수 있다면 고립도 감수하겠다는 태도다. 총선 전후 청와대와 친박 핵심이 국민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막장 패권 드라마를 멈추지 않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세계를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도 상대에 대한 ‘톨레랑스(관용)’가 사라진 세상의 단면도다.
그래도 과거 정치인들은 말이라도 ‘대의(大義)’를 내세웠다. 정치부 기자 초년병 시절 정치인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경구(警句)가 ‘나보다는 당(黨), 당보다는 나라’였다. 언제부턴가 한국정치에서 이 말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들은 기억이 2012년 김무성 의원이 공천에 탈락한 뒤 탈당을 고민하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선언할 때. 김 의원은 자신이 했던 “나보다 당이 우선이고, 당보다 나라가 우선”이란 말을 돌아봤으면 한다.
29년 전 어제, 대한민국은 운명공동체였다. ‘6·29 민주화 선언’은 지금까지 계속되는 ‘87년 체제’의 주춧돌이다. 87년 헌법은 민주화라는 대업(大業)을 이루고 이제 수명이 다했다고 나는 본다. 다들 ‘5년 단임제의 폐해’를 말하지만 눈앞의 이익에 빠져 개헌을 주도할 세력도, 지도자도 보이지 않는다.
‘나보다 당, 당보다 나라’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