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은퇴한 베테랑들이 말하는 조선업 현장 위기 원인과 해법
김진현 전 삼성중공업 지역장(맨위쪽 사진)과 노동열 전 현대중공업 상무보(맨아래쪽 사진)는 “노사가 함께 고통을 분담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모두 재직 당시 모습.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제공
국내 조선업체들은 해양플랜트를 설계할 기술이 없었고, 해외 설계사와 원활한 협력 관계도 구축하지 못했다. 계약 형태도 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실을 조선사들이 떠맡는 구조였다. 그러나 조선사들은 계약 한 건에 수조 원씩 나가는 매출(잎)만 보고 일단 저가로 수주했다. 수주 후 인도까지 5년 이상 걸리는 공정상 부실은 누적돼 한꺼번에 터졌다.
최근 국내 조선업체의 ‘베테랑 생산직’ 퇴직자를 잇달아 만나 조선업계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들어봤다.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최초로 생산직 임원에 오른 노동열 전 상무보(60)와 2013년 국내 조선업계에서 최초로 안전관리 분야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김진현 전 삼성중공업 지역장(58·기원급)이다. 노 전 상무보는 42년을 재직하다 올해 4월에, 김 전 지역장은 29년 재직 후 지난해 10월에 퇴직했다.
두 사람은 현재 위기는 노사 간 불신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노 전 상무보는 “경영진이 회사가 어렵다고 할 때마다 현장에서는 임금과 성과급을 적게 주려고 연례행사처럼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며 “경영진은 근로자와 소통하고 노조는 회사를 믿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지역장은 “상시 구조조정과 감사가 이어지면서 직원들 사기는 떨어지고 보신주의가 만연해 있다”며 “경영진도 연봉 일부를 반납하고 복지 혜택도 스스로 줄이는 등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설비와 인력 슬림화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노 전 상무보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 체제가 유지된다면 시황이 좋아졌을 때 또 저가 수주가 벌어질 것”이라며 “‘빅2’ 체제로 전환하고 예를 들어 한 회사는 선박, 다른 한 회사는 해양플랜트와 군함 등 특수선식으로 선종별로 특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무조건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고숙련자가 대거 이탈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며 “임금피크제 확대와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한 해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지역장은 “해양플랜트 블록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플로팅 독(부유식 선박건조대)은 대형 프로젝트가 끝나면 처분을 하거나 폐쇄해 효율성이 높은 독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고숙련자들이 관리직으로 옮기면서 현장에 비숙련자들이 주로 배치된 만큼 인력의 효율적 조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상무보는 기강을 다잡기 위해 제조업에 파견 근로를 금지하는 현행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원청회사가 도급업체에 직접 작업 지시를 내릴 수 없다 보니 전체 근로자의 90%에 달하는 협력사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딴짓을 하더라도 제재하거나 업무를 독촉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