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北 이수용 면담]
하지만 관영 신화통신이 전한 시 주석과 이 부위원장의 대화 내용만 보면 북한의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주문과 답변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이날 면담에서 “유관 당사국들이 냉정과 절제를 유지하고 대화와 소통을 강화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도발 자제를 촉구한 것이지만 상당히 완화된 표현이라는 평가다. 이 부위원장은 김정은의 구두친서를 통해 양국 관계의 복원 의지를 내비쳤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는 “시 주석이 언급한 ‘냉정과 절제’는 이제 더 이상 사고치지 말라는 뜻”이라며 “그러나 북-중 모두 서로의 핵심적인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관계 개선의 새 돌파구를 찾았다기보다는 북-중 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은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 의견 일치를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광고 로드중
북한이 이 부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중국이 자신들의 ‘핵-경제 병진’ 노선을 지지하는 것처럼 알리는 선전전에 나서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일 이 부위원장이 전날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을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쑹 부장이 “중국 당과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노동당과 인민이 자기의 실정에 맞는 발전의 길로 나가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지지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를 놓고 중국이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을 지지한 게 아니라 전통적 친선 관계를 염두에 둔 원론적인 언급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신화통신을 통해 소개된 양측의 대화 외에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내용이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은 지난달 7차 당 대회에서 핵-경제 병진 원칙을 천명했기 때문에 핵 포기와 같은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시 주석이 이날 이 부위원장을 만난 것은 유엔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전략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북한과의 관계를 2년 이상 냉각 관계로만 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더욱이 한미일 3국이 일본에서 중국을 뺀 3자회담을 가지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 베트남과 일본을 거치며 대(對)중국 포위 외교에 나서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남중국해에서도 미일 대 중국의 대립 구도가 점차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명분 때문에 전통 우방인 북한과 악화된 관계를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실리적 판단도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중국 최고지도자와 북한 특사의 만남을 지켜보는 우리 정부의 속내는 무척 복잡하다. 대북 제재의 한 축이던 중국의 시 주석이 전격적으로 면담에 응한 것은 북-중 관계 개선을 바라는 북한의 요청에 화답하는 모습으로도 비치기 때문이다.
광고 로드중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우경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