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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기자의 온사이드]미안합니다, 쯔엉

입력 | 2016-05-25 03:00:00


“출전 기회가 주어져 너무 놀랐다. 경기를 앞두고 걱정이 컸고 긴장도 많이 했다. 나에게는 유럽리그처럼 느껴질 만큼 수준 높은 경기였다.”

베트남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내 프로축구 K리그에 진출한 선수가 있습니다. 베트남 축구의 유망주로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이 선수는 인천에 입단해 2월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사흘 전인 22일 광주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해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시즌이 개막한 지 석 달 넘게 지나서야 첫 경기를 뛴 것입니다. 4만 명이 넘는 인천지역 베트남 근로자를 겨냥한 마케팅용 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무난한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김도훈 인천 감독도 이 선수의 경기력에 대체로 만족했습니다.

이 선수는 이날 경기 전까지 2군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축구 스타입니다. TV 광고 모델로 출연했고, 이 선수를 주인공으로 한 축구 만화가 있을 정도입니다. 이 선수의 이름은 르엉쑤언쯔엉(21)입니다.

3월 쯔엉을 처음 만났을 때 아시아의 여러 리그 중 한국을 택한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시아 리그 중 K리그가 최상의 경기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 월드컵에 가장 많이 출전한 나라도 한국이다. 베트남 축구 팬들에게 K리그는 한국 팬들이 생각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서 쯔엉은 “나를 응원하는 베트남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K리그에서 꼭 성공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쯔엉은 구단의 통역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는 2군에서 지낼 때 베트남에 있는 한국어를 잘하는 친구와 매일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한국에서 꼭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합니다.

그런데 쯔엉이 ‘코리안 드림’을 품고 찾아온 K리그에서 심판 매수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것도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상위 수준의 클럽으로 꼽히는 전북 구단이 심판 매수에 연루됐습니다. 쯔엉이 K리그에 오기 전인 지난해에도 경남FC의 심판 매수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전북의 네임 밸류가 경남FC와는 차원이 달라 파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전북은 23일 “자체 조사 결과 (우리 팀 소속) 스카우트 C 씨가 구단에 보고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누리꾼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전북의 해명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검찰이 심판 매수 혐의로 기소한 C 씨는 전북 구단에서 15년째 일해 왔습니다. 스카우트가 한 구단에서 이렇게 오래 자리를 지키는 건 아주 드문 일입니다. 축구인들 사이에서는 C 씨가 전북에서 스카우트 이상의 역할을 해왔다는 얘기가 파다합니다. 전북의 해명 이후 오히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자 최강희 전북 감독은 24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멜버른 빅토리와의 경기가 끝난 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구단보다는 선수단을 운영하는 감독 책임이 더 크다”며 감독직 사퇴 의사도 내비쳤습니다. 23일 쯔엉과 짧지 않게 얘기를 나눴다는 한 축구 관계자는 전북의 심판 매수 관련 소식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쯔엉이 이번 일을 아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알게 되면 상심이 클 것 같아 굳이 따로 얘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안합니다, 쯔엉. 꿈을 안고 찾아온 K리그인데, 심판 매수가 벌어지는 곳이어서….

한편 전북은 24일 안방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멜버른 빅토리와의 경기에서 2-1로 이겨 1, 2차전 합계 3-2로 8강에 진출했습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