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탄생/한종수 계용준 강희용 지음/332쪽·1만5000원·미지북스
197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현대아파트 신축공사장 인근에서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 1960년대의 압구정 일대는 대부분 농지와 배나무 과수원이었다. ⓒ전민조
개발 전의 강남 약도.
책은 1962년 화신그룹 총수 박흥식의 ‘남서울 계획’ 제안, 1969년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 준공, 1976년 경기고등학교 이전, 1981년 경부선 고속터미널 완공, 1989년 한국종합무역센터 트레이드타워 완공 등 1970년대에 본격화된 ‘영동 개발’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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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구 이론을 끌어다가 거대한 블록을 만든 강남 거리는 걷고 싶어지는 풍미라고는 없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는 섣부른 단정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걷고 싶어지는 풍미’란 객관적 선악이 아닌 주관적 호오(好惡)에 따른 판단일 따름이다. 시시콜콜한 개인적 기억을 꺼내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고교 선배인 가수 김현철 씨가 1989년 발표한 데뷔앨범 수록곡 ‘동네’의 가사로 넉넉하다.
“짧지 않은 스무 해를 넘도록 나의 모든 잘못을 다 감싸준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 나에겐 잊혀질 수 없는 한 소녀를 내가 처음 만난 곳. 둘이 아무 말도 없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돌아다니던 그곳.”
저자들은 각각 중문학, 법학,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도시재생과 토지개발 관련 업무를 해왔다. 강남 개발에 관여한 사람들의 기억, 건축가의 저서와 신문기사 인용, 강남 바깥에서 강남을 바라보며 떠도는 뜬구름 같은 얘기가 대부분이다. 그곳에서 살아가며 세월과 기억을 쌓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20년 전 어느 저녁 친구를 기다린 강남역 뉴욕제과 앞 거리, 여자친구와 눈꼴사나운 줄 모르고 가위바위보를 하며 한 계단씩 오르던 예술의전당 돌계단, 연잎과 청개구리가 가득했던 삼성동 봉은사 연못의 기억이 몇몇 페이지 위에 성냥불 환영처럼 잠깐씩 되살아났다 금세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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