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수행기사를 상대로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부당 행위를 해온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취재 결과 이들은 수행기사 업계에서도 이미 악명이 높았다. 두 사람의 갑질 행태를 들여다봤다.
‘사장님이 출발하기 30분 전부터 현관 기둥 뒤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고, 출발과 정지는 컵에 담긴 물이 한 방울도 흘러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해야 한다. 주행 시 사이드미러는 접어야 하고, 잘못하면 욕설은 물론 뒤에서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폭행을 하기도 한다.’
영화 〈베테랑〉의 막장 재벌 2세 조태오나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 남규만 이야기가 아니다. 대림산업 이해욱(48) 부회장과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46) 사장이 수행기사를 상대로 저지른 부당한 횡포의 일부분이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매출 9조5천억원을 기록한 재계 서열 18위의 대기업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 기준)이고, 현대비앤지스틸은 냉연강판 생산 업체로 지난해 6천8백억원의 매출을 올린 탄탄한 중견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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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기사 매뉴얼은 현대판 노예 계약서 정일선 사장의 갑질도 결코 이 부회장에 뒤지지 않는다. 현대비앤지스틸은 정 사장의 수행기사들을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교육했다. A4 용지 1백40여 장에 달하는 매뉴얼에는 모닝콜과 초인종을 누르는 시간과 방법, 정일선 사장이 운동을 하고 난 뒤 운동복의 세탁 방법과 운동 후 봐야 하는 신문을 두는 위치 등 하루 일과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에 따르면, 모닝콜은 정 사장이 받아 “일어났다. 알았다”고 할 때까지 해야 한다. 모닝콜 뒤 ‘가자’라고 문자 메시지가 오면 바로 뛰어 올라가야 하고, 정 사장 부인의 취침 후와 기상 전에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 한다. 정 사장이 빨리 가자고 하면 위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신호, 차선, 과속 단속 카메라, 버스 전용차로를 무시하고 무조건 달려야 한다. 기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 사장은 매뉴얼을 지키지 않거나 약속 장소에 늦을 경우 폭언과 폭행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갑질 두 오너, 아내끼리 7촌지간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왼쪽)과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갑질에 대해 사과 입장을 밝혔지만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선 이해욱 부회장과 정일선 사장은 모두 재벌 3세다. 이 부회장은 이재준 대림산업 창업주의 손자이자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 경복고를 거쳐 미국 덴버대학교에서 경영통계학을,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통계학을 공부했다. 1995년 대림엔지니어링에 입사, 2010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후에는 실질적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 꼼꼼하고 섬세한 스타일로, 대림산업의 아파트 브랜드인 ‘e편한 세상’을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재즈 감상과 드럼 연주를 즐기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다. 모던한 기획으로 젊은이들의 명소로 떠오르며 서울 서촌의 지가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대림미술관의 관장으로, 최근에는 한남동에 디뮤지엄을 새로 오픈했다. 이런 이유로 갑질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는 문화를 경영에 접목시켜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린 경영인이란 평을 얻고 있었다. 자동차 마니아로 보유 차량만도 상당한 숫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레이싱에도 관심이 많아 운전기사 면접을 볼 때는 ‘최고 시속 몇 km까지 달려봤냐’ ‘서울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몇 분만에 주파할 수 있냐’ 같은 질문을 자주 했다고 한다. 아내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여동생 구훤미 여사의 맏딸 김선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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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에서 2세, 3세로 내려갈수록 심해지는 갑질 최근의 언론 보도로 수면 위로 떠올랐을 뿐이지, 이해욱 부회장과 정일선 사장의 수행기사 상대 갑질은 업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해욱 부회장 부부는 각각 기사를 따로 두고 있는데, 지난해 교체된 운전기사가 4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대기업은 인사 · 총무팀에서 수행기사들을 관리하지만, 대림의 경우엔 기사가 자주 바뀌는 탓에 회사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어 수행기사 채용을 대행하는 업체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도 대림산업과 한두 번 거래를 해보고는 손을 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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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재벌들의 갑질.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바라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까.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뉴시스 셔터스톡 | 디자인 · 김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