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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승건]‘벽’ 같았던 교육공무원

입력 | 2016-05-11 03:00:00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그러니까 모든 절차를 거친 뒤 다시 오세요.”

교장 선생님은 단호했다. 무슨 말을 해도 결론은 “규정대로 하라”였다.

동아일보는 요즘 ‘평생행복 생활체육’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앞두고 유아부터 어르신까지 운동으로 건강을 다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취지로 기획한 것이다. 통합 대한체육회가 전략 패러다임으로 내세운 ‘생애주기별 체육활동 지원’의 첫 단계가 바로 유아 체육활동이다.

취재를 위해 유치원에서 체육 수업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봐야 했다. 대한체육회에 부탁해 ‘유아 체육활동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유치원 가운데 일부를 소개받았다. 취재는 가급적 빨리해 놓는 게 좋다는 생각에 몇 곳의 담당 지도자에게 바로 연락을 했고 한 곳으로부터 “내일 수업에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사진기자와 함께 한 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찾았다. 유치원 원감에게 설명을 들은 뒤 자리를 옮겨 수업을 지켜보고 있는데 원감이 다시 기자를 찾았다.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원장 선생님(초등학교 교장)이 취재를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미성년자 얼굴을 신문에 내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전에도 갑자기 유치원을 취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만난 사립 유치원 원장은 “뒷모습만 나오게 하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하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었다. 이번에도 그러면 될 줄 알았다. 간신히 교장과 대면했다.

“급하게 일정을 잡다 보니 보호자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뒷모습만 나오게 찍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하겠다.”

“그래도 안 된다. 수업에 참가하는 모든 원생 보호자의 동의를 받은 뒤 촬영해라.”

“방법이 없겠느냐. 수업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니 다시 일정을 잡는 게 쉽지 않다.”

“그건 그쪽 사정이다. 못하겠으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 여기는 안 된다. 동의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서약서도 써야 하는데 그것도 안 하지 않았느냐.”

“서약서를 써야 하는 것은 몰랐다. 죄송하다.”

“그것 봐라.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취재하지 마라. 계속 이러면 아는 기자에게 연락하겠다.”

죄송하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언론사 기자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당한 것도 처음이었다. 벽을 향해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방법은 있었다. 나중에 동의를 구하면 될 일이었다. 허락을 얻지 못한 원생이 나온 사진은 쓰지 않는 것도 방법이었다. 무조건 나가라고 할 사안은 아니었다.

유아 체육활동 지원은 정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국민 건강을 위해 세금과 체육기금으로 마련한 사업이다. 널리 알려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지면 좋은 일이다. 찾아보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는데도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는 교장을 보며 과거에 해결책을 알려 주며 흔쾌히 취재를 허락한 사립 유치원 원장이 떠올랐다. 정부라면 한 달 걸릴 의사결정이 기업에서는 이틀 만에 끝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