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중고 빌려타며 맨손 도전 4년! 세계 정상 우뚝 선 한국 썰매의 기적 꿈을 꾸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새 역사는 없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서 선수는 말한다. “다른 나라는 이렇게 대회가 연달아 열리면 뒤에서 썰매를 미는 역할을 하는 선수를 바꾸어 가면서 하는데, 우리나라는 대체 선수가 없어서 허리가 안 좋은데도 뛰었다.” 이 대목에서는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벌써 세계 랭킹 1위이다. 전후좌우의 조건들을 눈대중으로 따져보고, 이리저리 계산해보는 것으로는 절대 가능하다는 판단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반년 전에 저세상으로 떠나신 내 어머니는 배움은 없으셨어도 재치가 넘치셔서 경험으로만 빚어낸 몇 조각의 지혜를 불쑥 내어주기도 하셨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였을 때이다. 친구들하고 장난치고 놀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던 내게 어머니께서 집 앞에 있는 밭에서 마늘을 뽑자고 하셨다. 나에게는 감당이 안 되는 넓은 밭이었다. 깜짝 놀라서 “은제 이 많은 마늘을 다 뽑는당가?”라고 하면서 싫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해도 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또 몸을 써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잘하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아랑곳하지도 않고 먼저 마늘을 뽑으면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눈은 게을르제만 손발은 부지런헌 것이다.” 꼼짝없이 어머니 옆에 붙어서 마늘을 뽑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만 보였던 그 많던 마늘을 반나절 만에 다 뽑게 되었다. 눈대중으로는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았던 일을 묵묵히 손발을 움직이다 보니까 어느새 해낸 것이다. 어머니 말씀이 옳았다. 눈은 정말 게으르고, 손발은 부지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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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산으로도 봅슬레이 우승은 점쳐질 수 없다. 내가 반나절 만에 그 많은 마늘을 다 뽑는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나 현재를 돌파하는 일은 눈대중이나 계산을 벗어나는 일이다. 바로 꿈이다. 문제는 꿈을 꾸느냐, 안 꾸느냐이다. 꿈을 꾸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꿈을 향해 무모함을 감당하느냐, 감당하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결국은 손발을 움직이는 일이다. 행동이다. 무모함을 통과하지 않고 빚어진 새로운 역사는 없다. 모험, 즉 위험을 뒤집어쓰지 않고 강을 건널 수는 없다. 미래가 벌써 암울하게 느껴지는가. 혹시 겁을 먹고 있지는 않은가. 봅슬레이의 꿈과 마늘밭의 손발이 진리다. 썰매도 경기장도 없던 한국의 봅슬레이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우뚝 섰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