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핸드 타임/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김하은 옮김/664쪽·1만5800원/이야기가있는집
숲을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새들은 밀고하지 않으니까. 생산 목표치를 달성해도 상점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런 상태의 사회는 공포만이 다스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 많이 총살하고 더 많이 수용소에 수감시켰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사회 변화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자본주의란 불평등, 가난, 뻔뻔한 부(富)와 동일어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갑자기 겪은 자유에 대한 혼란이 담겨 있고 물질에 휘둘리다가 지친 탓에 소비에트 시대에 대한 향수를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는 위대한 사상을 섬기셨어요. 마치 뇌를 개조당한 것처럼 바지는 없어도 소총은 가지고 산다는 걸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오늘 세 종류의 신문을 샀는데 각기 다른 사실을 쓰고 있더군. 뭐가 진실이라는 거야? 예전에는 아침에 프라우다(소련 공산당 기관지) 하나만 읽고 나오면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었는데.”
‘세컨드핸드 타임’은 중고의 시대, 즉 새로운 시대를 맞았음에도 과거에 붙들려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시대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