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가는 장기불황의 그늘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가계의 주름살이 깊어지는 가운데 미래와 노후를 위한 안전판인 보험까지 깨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보험은 중도 해지하면 원금 손해를 보기 때문에 웬만하면 손대지 않는 금융상품이지만 팍팍해진 살림살이가 이 같은 ‘투자 상식’도 바꿔놓은 것이다. 또 당장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에는 담보나 신용상태가 좋지 않아 보험금이나 연금을 담보로 급전을 끌어다 쓰는 서민들도 늘고 있다.
○ 원금 손해 감수하고 보험 깬다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생명보험사들이 고객에게 지급한 해지환급금은 15조2489억 원에 이른다. 연 환산으로는 18조2860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10월 한 달 동안만 1조5345억 원이 중도 해지로 보험사에서 빠져나갔다. 손해보험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9월까지 손해보험사가 내 준 해지환급금은 7조3995억 원으로 2014년 같은 기간(6조7502억 원)보다 9.6%나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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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의 금융자산에서 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해 내놓은 ‘노동패널을 활용한 가계자산 구성 변화 점검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가계 금융자산의 42.05%가 현금 및 예금이었고 그 뒤를 이은 것이 보험(31.52%)이었다. 대출 원리금을 갚거나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할 때 수중의 현금이나 예금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손해를 보더라도 보험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보험·연금 담보로 급전 빌린다
보험과 연금을 담보로 급전을 끌어다 쓰는 가계도 늘어나고 있다. 보험사 약관대출은 보험계약을 담보로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생계형 대출’로 통한다. 까다로운 대출심사 없이도 일사천리로 대출이 이뤄지지만 대출 금리가 최대 9.3%(지난해 12월 공시 기준)로 은행 등 제1금융권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보험 약관대출은 증가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현재 생보사의 약관대출 잔액은 40조4489억 원으로 2014년 10월 말(39조9843억 원)에 비해 4646억 원 늘었다. 손보사의 취급액도 2014년 9월 말 현재 8조4712억 원에서 1년 만에 9조3328억 원으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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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중 팀장은 “보험 해지나 약관대출 급증 등은 가계 경제가 한계에 부닥쳤다는 신호”라며 “가계부채의 구조 전환 등도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가계 소득이 늘어날 수 있게 일자리 문제 등을 개선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