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法 통과 이후]<中>2018년 제대로 시행하려면 연명의료거부 10만명 DB화… 실시간 확인시스템 갖춰야
서울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의료기기에 의지해 2개월 남짓 남은 삶을 보내고 있는 한 말기 폐암 환자의 모습. 웰다잉법 시행으로 연명의료 중단 요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선 병원의 준비 상황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빨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법’ 위험
웰다잉법은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을 ‘말기 질환으로 인해 약 2주 안에 숨을 거둘 것으로 보이는 임종기’에만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폐렴이 폐암 합병증으로 생겼다면 연명의료 중단 사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폐렴이 원래 앓던 병에 의한 게 아닌 완전히 새로운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했다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문제는 폐렴이 왜 발생했는지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것. 법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상황이 다양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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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명의료 거부 10만 명 DB화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민단체, 병원 등을 통해 이미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은 1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사전의료의향서실천본부가 1만 건을 관리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환자 개인이 갖고 있다. 현재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임종기에 접어들어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의향서 시스템 구축 비용(약 10억 원)이 올해 예산에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기종 환자단체협의회장은 “18년 동안 존엄사 논란을 겪으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연명의료 거부 서명을 받는 노력을 해왔다. 10만 명의 데이터가 활용될 수 있도록 정부가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 충분한 설명과 동의 절차
환자들에게 웰다잉법의 취지와 절차를 충분히 설명하고 연명의료계획서에 동의하는 과정을 내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급박하게 돌아가는 임종기 병실에서 설명 과정이 요식행위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명의료 중단이 너무 쉽게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수술 시 환자 동의서를 받는 과정을 후배 의사 또는 간호사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있는 게 현실이다 보니 이런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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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들이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데 의료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의료행위에 대해 건보공단에서 지급하는 비용)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지부 관계자는 “연명의료 관련 건강보험 수가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 호스피스제 강화는 필수
국내 웰다잉법은 말기 질환으로 임종을 2주가량 남긴 환자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네덜란드, 미국 오하이오 주 등이 임종기를 약 6개월로 넓게 보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엄격하게 연명의료 중단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문제는 웰다잉법이 자칫 임종기만을 위한 법이라는 인식이 커져 ‘좋은 죽음을 실현하기 위한 법’이란 의미가 묻힐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라정란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장(수녀)은 “웰다잉법은 연명의료 중단 허용과 호스피스 완화의료 강화라는 두 축으로 만들어졌는데, 전자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라며 “호스피스 기반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연명의료 중단만 논의하는 것은 대들보 없이 집을 짓는 것과 같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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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홈다잉(Home Dying)’ 확산을 위해 가정 호스피스 확대가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부는 호스피스 강화 로드맵을 다지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5개년 계획’을 웰다잉법 후속 조치로 추진할 계획이다.
유근형 noel@donga.com·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