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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설조(雪朝)

입력 | 2015-12-25 03:00:00


설조(雪朝) ―조지훈(1920∼1968)



천산에
눈이 내린 줄을
창 열지 않곤
모를 건가.



수선화
고운 뿌리가
제 먼저
아는 것을-



밤 깊어 등불 가에
자욱이 날아오던
상념의
나비 떼들



꿈속에 그 눈을 맞으며
아득한 벌판을
내 홀로
걸어갔거니





올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화이트든 블랙이든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다. 또,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하기만 할까. 성탄절이 되든 크리스마스가 되든 각자의 상황이나 처지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전국의 모든 어린아이들은 평범한 크리스마스를 상상도 하고 싶지 않겠지만, 아직 권태기를 겪지 않은 연인들은 이날만 기다리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캐럴이 울리면, 맘이 요만큼씩 들썩인다. 캐럴은 올해가 끝나간다는 명백한 신호다. 한 해 동안의 특별한 사건과 인연, 깊은 슬픔과 기쁨들은 마음 안에 정신없이 흩어져 있는데 이제 송구영신의 자세로 그것들을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캐럴은, 성탄절이라는 단어는 바로 그때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과거를 잘 보내고, 상서로웠으면 좋을 내일을 바라는 때라서 12월 25일은 특별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의 틈 사이에 놓여 있는 시기여서, 과거는 쉽게 정리되지 않고 미래는 아직 불안하기 때문에 하얀 눈을 더욱 바라는지 모른다. 눈이 사람의 기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눈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조지훈의 ‘눈이 온 아침’, ‘설조’라는 작품처럼 말이다. 시인은 간밤에 여러 가지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생각들은 나비 떼로 변신했고, 나비 떼는 다시 눈송이들로 바뀌어 꿈결 내내 시인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아침에 눈이 내렸을 수밖에. 보지 않고도 눈이 왔음을 이미 알고 있을 수밖에. 밤사이 나와 노닐던 상념들이 변해 저 밖에 쌓여 있다는 표현이 참 놀랍다.

우리는 어떤 상념,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진 눈을 보고 싶은 것일까. 눈이 아니라, 2015년을 잘 보내고 2016년을 잘 맞이할 수 있다는 신호를 선물처럼 받고 싶다.

나민애 평론가